한국일보

Kings Canyon - 가족 캠핑 여행기

2003-06-0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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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계곡’, 누가 명명했는지 참으로 잘 지었다. 이름 그대로 킹스캐년(Kings Canyon) 국립공원은 알래스카를 제외한 북미대륙 최고봉 위트니 마운틴(Mt. Whitney)을 위시한 하늘을 찌르는 봉우리들 사이로 빙하에 의해 깊게 파인 계곡들이 만들어낸, 무한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천하 절경의 대공원이다. 미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악 자연지대를 지니고 있다는 캘리포니아의 등뼈 시에라네바다 산맥 남부에 자리잡은 킹스캐년은 만년의 눈으로 둘러싸인 맑은 호수들과 수많은 폭포, 깎아지른 절벽 그리고 여름이면 야생화로 뒤덮이는 초원 등 자연미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예술을 모두 포용하고 있다.

공원 가운데 형성된 시더 그로브(Cedar Grove) 캠핑장은 ‘전국 베스트’ 리스트에 항상 상위를 차지하면서 캘리포니아 캠퍼들의 ‘메카’에 해당되는 야영장으로 한인들 사이에도 그 명성이 높은 곳이다. 여름방학을 맞는 자녀들을 위해 부모들은 가족이 함께 하는 획기적인 여행계획을 적어도 하나쯤은 준비해야할 시기가 돌아왔는데 시더 그로브만큼 자녀들과 함께 방문하기 좋은 여름 여행지도 쉽게 찾기 힘들 것이다.

캘리포니아는 물론 미국의 보물 킹스캐년 시더 그로브 캠핑장으로 지난 메모리얼 데이 연휴 직장 선배들과 가족 캠핑을 하면서 명산의 정기를 온몸 가득히 받아들이고 돌아왔다.


이제 겨우 3세, 5세된 두 아이들을 데리고 처음으로 떠나는 가족 캠핑. 여러 가지 우려되는 점이 많았지만 캠핑 경력 30여회의 프로 캠퍼인 직장 선배의 독려로 무작정 별 준비 없이 자동차 핸들을 킹스캐년 국립공원으로 돌렸다. LA에서 5번 프리웨이 노스를 타고 고먼(Gorman) 지역을 지나면서 올해가 근 10년간 최고였다는 야생화 물결의 막바지가 눈에 들어
오는데 왠지 이번 여행의 성공을 예고하는 길조로 보여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99번 노스로 갈아타고 가다가 프레즈노(Fresno)에 도착하기 전에 나오는 비살리아(Visalia)로 향하는 198번 이스트에 들어섰다. 이 길로 쭉 가면 세코야(Sequoia) 국립공원으로 들어서고 비살리아에서 63번 노스로 갈아타면 킹스캐년으로 향하는 지름길인 지방 도로 180번을 만난다. 비살리아에서 킹스캐년까지는 한없이 오렌지 밭이 펼쳐진다. 오렌지 밭을 지나 구불구불산 고개를 지나면서부터는 풍경이 갑자기 달라지면서 돌산이 나타나고 저 멀리 보이는 먼 산에는 희끗희끗한 눈이 보인다. 바로 킹스캐년 입구를 만난 것이다.

킹스캐년 국립공원은 누구나 잘 알듯이 두 개의 공원이 합쳐진 것으로 북쪽이 킹스, 아래에 위치해 맞붙어 있는 것이 세코야이다. 하늘을 찌르는 봉우리들 사이로 빙하에 의해 깊게 파인계곡이 보이고 차창 멀리 광야 위에 흰 구름을 머리 위에 이고 있는 청록색 거산이 보인다.
시더 그로브로 들어가는 길은 꼬불꼬불 2차선인데 위험하기 짝이 없다. 한쪽은 비쭉 튀어나온 바위덩이가 붙은 벼랑이고 다른 한쪽은 새까맣게 높은 절벽이다. 스케일이 어마어마해서 몇마일 아래까지 내려다보이는 산 경치는 실로 장관이다. 자칫 한눈을 팔아 산세에 시선을 빼앗겼다간 천야만야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질 판이다. 그래서 그런지 도로 곳곳에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다. 자꾸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게 된다.

위험한 고갯길을 겨우 넘어 열두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 계곡으로 내려 왔다. 절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온다. 드디어 시더 그로브에 도착한 것이다. 금요일 오후에 도착했는데 연휴라 300여개의 캠프 사이트가 벌써 반 이상 차있다. 선착순(first come first)으로사이트를 판매하는데 만약 토요일에 왔으면 사이트가 없어 낭패를 당할 뻔했다.

돌고 돌아 가장 마음에 드는 곳에 텐트를 올리는 순간 하늘에서 소나기가 갑자기 쏟아진다. 캠핑 프로 선배는 내일 오기로 했는데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급하게 인근 레인저 스테이션으로 달려가 긴박한 상황의 해결책을 물었다. 얄미울 정도로 여유 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던 레인저는 아무런 걱정을 말고 빨리 텐트를 치라고 한다. 산의 기후는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곧 비가 그칠 것이라며 안심을 시킨다. 그의 예언(?)은 거짓말 같이 맞아떨어져, 소나기는 20분도 내리지 않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 푸른색으로 돌변했다.

시더 그로브에는 십 크릭(Sheep Creek), 센티넬(Sentinel), 캐년 뷰(Canyon View), 모레인(Moraine) 등 4개의 캠프 그라운드가 있다. 마켓과 레스토랑 그리고 비지터 센터 등 빌리지가 있는 센티넬이 메인 그라운드로 각종 부대시설이 가까워, 가장 먼저 사이트가 나간다. 하지만 다른 캠핑장도 빌리지에서 단 200~300야드 정도 떨어져 있기 때문에 그리 불편하지 않다.

캠핑의 최고 즐거움은 단연 캠프파이어(camp fire). 뜨거운 장작불에 머시멜로, 소시지 등을 긴 막대기에 꽂아 구우면서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 근심이 모두 사라지면서 어릴적 불렀던 캠프파이어 송이 그대로 입에서 흘러나온다. 선배가 삼겹살을 장작에 구워주는데 요것이 시원한 맥주와 명콤비를 이룬다. 선배가 나무를 하러 가자고 손을 붙든다. 캠프파이어에 필요한 나무는 절대 빌리지 마켓에서 구입하지 않는단다. 한 무더기에 10달러로 가격이 만만치 않다고. 차를 타고 캠핑장에서 좀더깊은 산골로 들어가자, 쓰러져 있는 나무들이 지천이다. 톱까지 준비해 썩둑썩둑 나무를 잘라 장작을 만들어내는 선배가 자랑스럽다.어디서 사왔는지 형수가 길이가 2피트는 될 것 같은 질 좋은 고기 덩어리를 아이스박스에서 꺼내 두껍게 스테이크 모양으로 자른다. 갖은 양념을 하고 불이 훨훨 타오르는 장작 위 석쇠에 고기를 올리니, 서부 영화에서 자주 나오던 웨스턴 스타일 즉석 바비큐가 그 자리에서 서브된다.

이번 캠핑의 하이라이트는 시더 그로브 오버룩(overlook)까지의 하이킹. 빌리지 인근 호텔 크릭 트레일에서 시작되는 하이킹은 왕복 4마일 정도인데 엘리베이션 게인이 1,500피트 정도로 가파른 길을 올라가는 쉽지 않은 코스이다. 어른들은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3세 꼬마가 걱정된다. 그런데 이 친구가 일행을 따라 쉬지 않고 터벅터벅 산을 잘도 올라간다. 아버지는 숨이 막히고 땀이 비오듯 쏟아지는데 꼬마들은 축지법을 쓰듯이 저 멀리 먼저 올라간다. 창피해서 쉬자는 말도 재대로 못하고 정상까지 어렵게 도달했다. 정상에서 바라다보는 킹스캐년은 보는 이로 하여금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멀리 킹스 리버가 산들이 겨우내 덮고 있던 눈을 녹인 수정 같이 차고 맑은 물을 품어내고 있으며 만년설을 덮고 있는 고봉들이 자꾸 여름 햇살로 벗겨지는 산등성이가 부끄러운지 지나가는 구름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형용하기 어려운 자연의 극치가 오버룩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다.
오는 길, 돌아오는 연휴 차량에 밀려 무려 7시간(보통은 4시간) 가까이 운전을 했지만 머리 속은 캥스캐년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가득 차, 운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가는 길
LA에서 5번을 따라 북상 99번으로 갈아타고 계속 북상하면 베이커스필드를 지나서 프레즈노(Fresno)에서 나오는 180번 하이웨이 이스트를 갈아탄다. 198번과 180번의 교차점에 이르면서 Ranger Station에서 공원 입장료(10달러)를 지불하고 180번 Kings Canyon Rd.로 계속 내려가면 Grant Grove와 울창한 숲 사이로 수많은 캠핑장을 지나 Boyden Cave를 만나면서 곧바로 Cedar Grove 캠핑 그라운드에 도착하게 된다. 다른 길은 99번에서 비살리아로 빠지는 198번 이스트로 갈아타고 63번 노스로 진입해 1시간 정도 올라가면 킹스캐년으로 향하는 180번을 만나게된다.



◎시더 그로브 캠핑 ABC…

1. 시더 그로브의 캠핑장들은 예약을 받지 않는다. 선착순으로 사이트를 구할 수 있는데 평일에는 사이트 접수에 별문제가 없지만 주말이나 연휴에는 대부분의 사이트가 매진될 수 있다.
만약 만원사례를 빚으면 시더 그로브 외에도 킹스캐년과 세코야에는 3,000여개의 캠핑 사이트가 있기 때문에 다른 캠프장을 찾아 나서면 된다. 하지만 밤늦게 이 곳에 도착하는 캠핑 사이트 수색이 매우 어려울 수 있다.

2. 사이트의 요금은 1박 18달러. 한 사이트에 2대의 차를 주차할 수 있으며 6명까지 야영을 할 수 있다. 요금은 자진해서 캠핑장 입구 게시판에 있는 박스에 넣어 지불하면 된다.

3. 다음날 도착하는 일행을 위해 사이트를 미리 맡아놓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사이트를 사용하지 않으면 사용료를 지불해도 레인저가 다른 캠퍼에서 사이트를 넘길 수 있다.

4. 음식 조심, 곰 조심. 캠핑장은 캘리포니아 블랙 곰(Black Bear)의 서식지에 위치하고 있다.
모든 음식은 사이트에 마련된 곰 침투방지 금속 박스에 보관해야 한다. 음식을 자동차에 보관하면 곰이 차의 유리창이나 트렁크를 훼손시키고 음식을 꺼낸다. 한번 사람의 음식 맛을 본 곰은 자주 사이트로 내려오기 때문에 끝내 사살되고 만다. 음식을 잘못 간수해 선량한 곰이 희생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5. 시더 그로브의 여름철 낮 최고 기온은 90도에 달하지만 밤이면 기온이 40도 내외로 떨어진다. 두꺼운 침낭(sleeping bag)은 물론 침낭 밑에 까는 ‘깔개’(matt)도 꼭 준비해야 한다. 텐트는 방수가 잘되는 것으로 고르고 대부분의 사이트가 매우 넓기 때문에 10인용 대형 텐트도 무리 없이 칠 수 있다.

6. 밤 10시가 지나면 ‘조용한 시간’(quiet time)이다. 산중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잘 들리기 때문에 밤이 깊어지면 잠자리로 들어가는 것이 좋다.

7. 식수를 충분히 준비한다. 특히 하이킹 할 때 마실 수 있는 소형 병물을 1인당 5개 이상 준비한다.


◎킹스캐년 유명 관광지

▲롤링 리버 폭포(Roaring River Falls)
빌리지에서 180번 동쪽으로 3마일 거리에 있다. 차에 내려 5분만 걸어가면 만나기 때문에 노인이나 어린이도 쉽게 찾아 갈 수 있다. 겨우내 쌓였던 눈이 녹아 흘러오는 계곡 물이 하얀 거품을 뿜으며 떨어지는 폭포 주변에는 몇 년씩 묵은 고목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캐년 뷰포인트(Canyon Viewpoint)
빌리지에서 180번 동쪽 1마일 거리에 있는 전망 포인트. 빙하에 깎인 ‘U’ 형태의 계곡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로드 앤드(Road End)
180번 도로가 끝나는 지점이다. 등산객들이 차를 세우고 이스턴 시에라까지 하이킹을 시작하는 포인트이다. 요세미티 밸리와 유사한 장관이 길이 끝나는 곳까지 이어진다. 킹스캐년을 방문하는 사람은 꼭 180번이 끝나는 지역까지 운전을 하면서 주변을 절경을 감상해야 한다.

▲보이던 동굴(Boyden Cave)
1억5,000만년 전에 생긴 종유동굴인데 흐르는 강을 끼고 있다. 빌리지에서 서쪽으로 20분 거리에 있다. 내부에 조명이랑 계단들이 잘 만들어져 있어 노약자들도 쉽게 구경할 수 있다. 입장료는 성인 10달러, 어린이 5달러. AAA 할인(10%)을 받을 수 있다.

▲그리즐리 폭포(Grizzly Falls)
빌리지 서쪽 15분 거리에 있는 30여 피트 높이의 웅장한 폭포이다. 특히 올해는 쏟아져 내리는 물이 많아 그 모습이 더욱 볼만하다. 180번 도로 바로 옆에 있어 쉽게 진입할 수 있으며 피크닉 시설도 마련되어 있다. 폭포에 가깝게 다가가고 싶으면 타월이나 비옷을 준비한다.

▲그랜트 그로브(Grant Grove)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세계적인 관광지로 킹스캐년 입구에 있다. 수십개에 달하는 3,000년이 넘은 세코야 거목들이 0.5마일 짧은 트레일 곳곳을 장식하고 있다. 세계에서 3번째로 크다는 그랜트 나무가 그로브 중앙에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 백두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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