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숨’ (Respiro)★★★★½

2003-05-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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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촌의 삶이 너무 버거워
좌충우돌 야성녀의 도전

태양도 뜨겁고 여인도 뜨겁다. 태양이 사정없이 유린하는 척박하게 아름다운 시실리 섬의 맴도는 테두리가 숨이 막혀 방향과 속도감을 잃고 발광하다시피 하는 여인의 정열이 화씨 100도를 훨씬 넘겠다. 야만적 자연성과 생명력과 열정 때문에 영화를 보다 화상을 입겠다.
시실리 서남부의 작은 섬 람페두사는 넘침의 상징인 푸른 바다에 갇힌 건조한 어촌. 신이 잊어버린 듯한 섬의 남자들은 1주 6일간 바다에 나가 고기잡고 여자들은 수산물 가공공장서 일하며 가난하게 산다. 그들은 단순한 자연인들로 일과 욕망, 본능과 쾌락의 사람들. 자기들끼리의 사회 규범이 엄격한 이 섬의 이단자가 메듀사처럼 헝클어진 머리에 초컬릿빛 피부를 한 깊고 갈망하는 눈을 지닌 그라지아(발레리아 골리노-’레인 맨’에서 탐 크루즈 애인).
세 남매와 야성적인 남편 피에트로(빈첸조 아마토)와 함께 애정으로 똘똘 뭉쳐 사는 그라지아는 본능과 관능의 여인이요 예측 불허한 소녀 같은 여인. 자유 혼과 생명력이 여인의 내부를 견디다 못해 위로 분출해 머리가 그렇게 무성하게 헝클어졌나 보다.
그라지아가 마을의 규범에 아랑곳 않는 행동을 하면서 그녀는 동네 가십거리가 된다 그러나 영구 접착제로 결합된 그라지아의 가족들은 그녀를 철저히 보호한다. 그라지아는 섬과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섬의 삶의 반복성과 한계성이 너무나 버거워 주변을 모두 불태우는 듯한 행동을 할 뿐이다. 그러나 그라지아의 행동이 갈수록 좌충우돌식이 되어가면서 그녀의 시집측에서 그라지아를 밀라노의 정신병원에 보낼 계획을 세운다. 죽어도 가족과 떨어지기를 거부하는 그라지아를 바닷가 암벽 속에 숨겨주는 것이 그녀의 13세난 독립심 강한 장남 파스콸레(프란체스코 카시사). 그라지아가 행방불명이 되자 온 마을이 그녀를 찾느라 난리법석을 친다.
원시적 자연을 배경으로 일어나는 사랑과 질투와 가족 사랑 특히 끈질긴 모자의 혈연 관계의 드라마로 태양과 정열과 소금기 때문에 입에서 찝찔한 맛이 난다. 사실과 환상을 섞은 마법적 사실주의 색채를 갖춘 뜨거운 이탈리아 영화로 람페두사 현지 촬영이 눈이 따갑도록 아름답다. 완전히 골리노의 영화로 자기 몸을 불사르는 활활 타는 연기다.
에마누엘레 크리알레세 감독(각본 겸). PG-13. Sony Picture Classics. 뮤직홀 (310-274-6889). 뉴월셔(310-394-8099). 코스타메사 빌리지3(800-555-TELL), 타운센터5(818-981-9811). 플레이 하우스 7(626-844-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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