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못말려요, 라인댄스”

2003-01-1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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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운 클래스 백발 청춘들의 ‘춤추는 새해’

흥겨운 리듬따라 내식대로 흔들어도
건강얻고 활기차고… “하루가 짧아”


젊음이란 물리적 나이를 의미하지 않는다. 뜨거운 피를 갖고 있고 매사에 적극적인 당신은 백발일지라도 청춘이다. 그리고 청춘은 아름답다. 새해 벽두 ‘백발의 청춘’들을 만나고 집으로 향하는 길, 어디에서부터 전해졌는지 삶을 향한 뜨거운 에너지가 솟아오른다. ‘사람 만나는 50가지 방법’이라는 책에 보면 라인댄스 클래스에 참여할 것을 권하고 있다.


한인들을 위한 라인 댄스(Line Dance) 클래스가 있다고 해서 다운타운의 한 시니어 아파트 여가 활동 스튜디오를 찾았다. 복도에서부터 귀에 익은 차차차와 컨트리 뮤직이 흥겹게 들려온다. 문을 열고 들어섰더니 아침시간인데도 약 50명의 학생들이 줄을 맞추어 리듬에 따라 흥겹게 춤을 추고 있다. 라인댄스 지도 교사인 임효순(76)씨가 헤드 마이크를 쓴 모습은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서태지 같다.

춤추는 장소의 벽을 따라 시계 반대방향으로 진행되는 모든 춤을 라인댄스라 하지만 댄스 스포츠의 현대 종목은 모두 시계 반대방향으로 추기 때문에 라인댄스라 할 수 있고 삼바, 차차차와 같은 라틴댄스 역시 같은 계열로 분류할 수 있다. 춤추는 것이 얼마나 건강에 좋은 영향을 주는지 알면서도 함께 출 짝이 없다는 이유로 이제껏 미루어 왔다면 라인댄스를 배울 일이다. 남자와 여자가 손을 붙들지 않고 떨어져 추기 때문에 싱글들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무송의 “사는 게 뭔지”는 리듬이 흥겨워 이 모임의 댄스 클래스에서 자주 애용되는 노래. 음악에 맞춰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발끝으로 찍고 돌고 50여명이 똑같은 모습으로 춤을 추는 장면은 바라보고만 있어도 흥이 난다. 지도 교사인 임효순씨야 제비처럼 날렵하게 몸을 움직이는 게 놀라울 것도 아니지만 학생들은 그 복잡한 스텝을 언제 외워 저렇게 날아다니는 걸까. 아무래도 조금 몸매가 날렵한 이들이 허리며 팔을 더 세련되게 흔들어 댄다. 머리가 백발인 한 할머니는 양쪽 팔을 몸통에 꽉 붙인 모습이 독일인들의 치킨 댄스 추는 것을 연상케 하지만 남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이다.

나이 들어서 저 정도의 춤 실력을 지닌 걸 보니 분명 젊은 시절부터 사교 댄스를 해왔겠지 하는 짐작은 빗나간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은퇴 후의 여생을 더욱 건강하고 즐겁게 보낼까 고민하던 임효순씨는 10년 전 동네 시니어 센터를 찾아가 라인댄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뒤늦게 춤바람(?)이 난 그는 아예 내친 김에 볼룸댄스, 탱고, 왈츠까지 섭렵을 했다. 그는 지금 다운타운 에인절 플라자 시니어 센터와 한국 노인센터 등 다양한 장소에서 라인댄스를 지도하고 있다.

피부도 곱고 무엇보다 삶이 즐거운 듯 얼굴 한 가득 미소를 안고 있는 서선자(68)씨는 2년 전부터 라인댄스 클래스에 참가했다. 남편과 함께 볼룸댄스를 시작하고 싶었지만 댄스를 점잖은 선비가 할 바가 아니라는 남편의 고정관념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마냥 세월만 보낼 수 없던 차에 라인댄스라면 파트너 없이 혼자서도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참가하기 시작했다. 쉴 새 없이 다리를 움직이는 라인댄스는 무리가 없는 하체 운동. 라인댄스를 시작하고 오래지 않아 혈압이 정상으로 내려가고 근육과 관절의 통증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과거 불룸댄스를 해왔던 앤젤라 박씨는 스텝 밟는 자태가 확실히 출중하다. 그녀의 주변에는 선생님 놔두고 공부 잘하는 모범생에게 수학문제 푸는법 물어보는 학생들처럼 항상 수강생들이 모여들어 도움을 청한다.

오른쪽으로 네 스텝, 반대쪽으로 네 스텝, 앞으로 두 번, 뒤로 두 번, 차차차 다 외운 뒤에 저쪽 구석으로 가 한번 해보려니 이게 마음처럼 쉽기를 하나. 혼자 미운 오리새끼처럼 유별난 동작을 하다 보니 어느 틈에 얼추 남들과 비슷한 스텝을 밟고 있다. 한 번 스텝이 몸에 익고 팔도 이리 저리 따라 움직이자 신명이 나기 시작한다. 걷기나 달리기를 할 때 연신 시계를 보며 얼마나 시간이 지났나를 확인하던 것과는 달리 신이 나서 춤을 추다보니 음악도 몇 곡 나오지 않았는데 금세 1시간이 흘러가 버린다.

흥겨운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고 나면 온 몸이 땀으로 젖어들 만큼 운동 효과가 만점이다. 라인댄스는 충격이 적고 알츠하이머 예방과 스트레스 해소에도 좋은 운동이라 많은 시니어 센터에서 클래스로 마련하고 있다. 시니어들은 물론이고 라인댄스를 배우고 싶어하는 젊은이들도 참여할 수 있어 댄스와 더불어 삶의 예지를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뮤지컬 ‘렌트’의 나레이터 마크, 영화 ‘내 열정의 대상’의 조지와 니나는 모두 시니어 센터에서 배운 춤 솜씨로 무대와 은막을 꽉 채웠었다. 신나는 리듬과 함께 건강은 보너스로 주어지는 라인댄스로 새해를 힘차게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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