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사람의 주말나기 ‘불타는 예술혼’타일에 ‘이글이글’

2003-01-1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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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일 인테리어 작가 멜라니 최씨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짓는 특징의 하나는 예술적 의지가 아닐까. 14,500년 전 뷔름 빙하기 말엽, 수렵과 채집으로 살아가던 크로마뇽인들이 남긴 알타미라의 동굴 벽화는 그 의도가 주술적이든 어떻든 선사시대 인류의 예술적 감성과 에너지를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다. 영화 ‘캐스터웨이(Castaway)’에서도 남태평양 근처의 무인도에 난파된 척(탐 행크스)은 먹고사는 가장 근본적인 고민을 해결한 뒤 가장 먼저 동굴 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멜라니 최씨의 피 속에는 이런 강렬한 예술 혼이 흐르고 있는 것 같다. 염색 공예를 전공한 그녀는 염색 약품에 대한 알레르기로 더 이상 헝겊 위에 자신을 표현할 수 없게 됐을 때 그 대상을 도자기로 바꾸었다. 하지만 화학 약품에 유별나게 민감한 몸의 반응에는 별 차도가 없었다.
이 정도 되면 염색 공예고 도자기고 다 그만둘 만도 하건만 예술에의 뜨거운 열정은 또 다른 대상을 찾아 나서게 했다. 그리고 그녀는 6평방 인치의 작은 타일에서 그 구원을 찾았다. 뭔가 표현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그녀의 예술적 열망과 집착은 그림 그릴 종이를 구하지 못해 눈앞에 보이던 담배 은박지에라도 이미지를 그려 넣던 화가들보다 결코 작지 않다.
멜라니 최씨는 가족들이 그녀가 작업에 들어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볼멘소리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번 작품에 몰입하면 며칠씩 끼니도 거르고 잠도 설치기 일쑤니 건강을 걱정하는 가족 중 누가 쌍수를 들고 환영할까. 한 자세로 색깔을 칠하다 보면 허리디스크도 심해진다. 하지만 작품이 완성될 때 이를 바라보는 희열로 인해 그녀는 불면의 밤과 육체의 고통을 망각한다.
타일 인테리어는 생활에서 즐길 수 있는 예술. 욕실이나 부엌의 건축 자재인 타일 위에 물감으로 그림이나 문양을 그린 후 유약을 발라 화덕에 구워 내는 과정을 거친다.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내게로 다가와 꽃이 된 그이처럼 단색의 밋밋한 타일은 그림 그리는 자가 불러 넣어주는 혼으로 인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며 특별한 예술 작품으로 변신한다.
그림을 그려 장식한 타일은 액자를 해서 벽에 걸기도 하고 뒤에 부속품을 부착해 시계로 만들기도 한다. 어디 그뿐일까. 냄비 받침, 쟁반 등 생활 소품, 테이블 등 응용할 수 있는 영역은 무궁무진하다.
도저히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소중한 공예 작품을 만드는 데에 드는 비용은 의외로 너무 낮았다. 처음 시작할 때 약 40달러 정도를 들여 물감을 구입하면 3-4개월 정도는 충분히 쓸 수 있다. 타일이야 홈 디포나 건축 자재상에서 6평방 인치 크기가 99센트, 붓은 집에 있는 것을 써도 되고 그림을 다 그려 넣은 후 화덕에 구워 내는 비용도 2달러가 채 되지 않는다.
멜라니 최씨는 타일 인테리어에 관심이 있는 주부들을 위해 토랜스 자택 스튜디오에서 클래스를 마련할 예정이다. 문의는 (310) 539-6880 또는 (310)795-4463으로 하면 된다. <박지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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