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객의 약속

2002-10-2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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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크로 A to Z

하루 엄청난 양의 전화를 받으며 일을 하게 되는데, 실로 많은 일들이 전화 때문에 일어나고,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어떤 분들은 전화로 기다리기가 다급하시거나 미안한 마음에 잠깐 들르시는 분들도 계시다. 특히 많은 분들이 에스크로는 공공 기관이 아니니 괜찮겠지 하시며 점심시간에 오시는 경우도 흔하다. 보험이나, 은행, 융자 그리고 심지어 닥터 오피스까지도 마케팅 개념이 도입되면서 서비스업으로 인식되어지기 시작했다. 많은 후배들이나 나이 어린 직원들이 손님들로부터 ‘서비스 업’에 대한 ‘훈계’를 받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많이 아프고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아 그러세요, 오시는 중이세요? 10 분 후에 도착하신다 구요?, 그렇게 말씀드릴 께요” “제이씨, 프론트에 김 선생님 기다리시는데요” 이런 약속 아닌 메시지들이 하루에 가장 많이 받는 난처한 약속이지만 그래도 이는 상황이 좀 나은 편이다.
예기치 않은 약속은 다음 약속을 지연시키고, 또 빠듯한 스케줄 때문에 우리의 몸과 마음이 많이 지치게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지난 십수년간 이런 저런 많은 손님들을 만나면서 안타까왔던 것은 외국인과 비교할 때, 아직 많은 한인들이 약속에 익숙하지 못하시고, 그 중요함 또한 잊으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보통 하루 전에 시간 별로 스케줄이 짜여지는데, 오전과 오후의 약속은 그 성격부터가 다르다. 은행에 되돌아 가야하는 서류들은 가급적 오전에, 셀러와 바이어의 절충이 필요한 문제들은 오후에 등등....
오늘은 오랜만에 제대로 점심을 먹자고 벼르고 나서려니, 아이들과 부부가 서류에 서명하러 갑자기 찾아오셨다. 물론 에스크로 클로징 날짜는 돌아오고, 급한 사정이지만 은행에서 도착하지 않은 서류를 어쩌랴. 하루를 휴가내고 아이들과 먼길을 오신 것이 안타까워, 우선 기다리시게 하고, 이메일로 부랴부랴 받아서 서명은 하시게 했지만, 클로징에 필요한 다른 서류들과 케시어스 체크때문에 다시 오셔야 하는 불편까지는 피하기 어렵다.
만약 오늘의 이 젊은 부부가 하루 전에 확인하시고 오시었다면, 아기들과 편안하게 쾌적한 회의실에서 신속하고 여유 있게 서류를 검토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갑자기 약속 없이 오신 손님은 5분을 인내하지 못하고, 정식으로 약속하신 외국 손님들은 기다리는 10분에 ‘NO PROBLEM’ 하신다.
이제는 우리 한인사회도 당당히 프로페셔날 한 서비스를 받을 만큼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상당히 성장하여 너무도 뿌듯하다. 아직은 알게 모르게 주류사회에서의 차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우리 스스로가 서비스를 제대로 누릴 수 있는 훈련을 하였으면 한다.

제이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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