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주는 감사패

2002-10-03 (목)
크게 작게

▶ 현장에서

좋은 일, 기쁜 일, 궂은 일로 많은 사람들이 기억에 남지만 유난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
학군 좋은 웨스트 힐에 사는 중년 부부였는데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집을 사서 아들, 딸을 교육시키고 딸은 시집을 보내고 아들은 좋은 대학을 나와 변호사로 일하는데 한눈에 보아도 성실하고 열심히 자녀 교육에 몰두하며 미국 생활을 하는 분이었다.
내가 그 집을 리스팅 받기 전에 다른 부동산 에이전트가 팔기로 했는데 몇 개월이 지나도 집은 팔리지 않았고 다운타운에 있는 비즈니스까지 운전을 하려니 너무 힘들어했다.
집을 빨리 팔기 위해서 치밀하게 가격 분석도 하고, 앞뒤로 둘러본 다음 집에서 고칠 것은 몇 가지 손보기로 하고, 오픈 하우스에 정성을 들이기로 했다.
오픈 하우스가 있는 날 특별히 커피로 온 집안 향기도 내고, 몇 가지 예쁜 화병으로 집안 생기도 넣어보고 커튼으로 빛 조절도 해보고, 화장실과 방마다 향기 나는 예쁜 초를 켜서 냄새도 제거해 놓고, 인포메이션 시트는 잘 되어 있는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오픈 하우스를 시작했다.
오픈 하우스 때 사람들이 영화관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선 것처럼 긴 줄이 기다리는 꿈을 꾼 적이 있지만 어디 인생이 꿈 같던가.
그 날도 가끔 들리는 옆집 사람들, 지나가는 사람들, 부동산 하는 사람들을 기다리며 그 집에 걸려있는 사진 액자도 보고 많은 트로피와 감사패는 무엇 때문에 받은 것인가 하고 하나하나 읽고 있는데 어떤 감사패 앞에서 나는 그만 눈물이 핑 돌고 말았다.
<둘째 자부…
결혼하여 맨주먹으로 출발하여 아들, 딸 낳아 교육 잘 시켰으며 부모에게 걱정 안 끼치고 화목한 삶을 유지함을 고맙고 감사해서 어머니가 이 상패를 줌. “사랑하며 사는 집이 낙원이다. 진실로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 1992년 7월 10일 시어머니 백옥이>
세상이 얼마나 뒤숭숭한가. 신문 열어보기가 무섭게 일어나는 어처구니없는 일들.
상상할 수도 없었던 패륜아 이야기며, 우발적이긴 하겠지만 아버지가 아들을 살해한 사건. 쉽게 깨어지는 가정들. 서로를 믿지 못하는 사회.
그리 멀지 않은 20년 전 내 기억과 교육으로는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사랑하고 남편이 아내를 신뢰하며 엄마가 자식을 정성과 헌신으로 돌봐주는 가정, 이웃과 이웃이 믿고 도와주며 사는 세상으로 하루 빨리 회복되었으면 한다.
가화만사성이라 했는가. 그 집은 아주 성공적으로 팔려 곧 결혼할 아들의 집을 사주고 비즈니스 가까운 곳에 두 분 있기 좋은 콘도로 이사갔다.
(818)762-0764
남옥경
<골드 스타 부동산>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