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차고를 반듯한 활동공간으로’

2002-08-2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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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잡동사니 창고 취급을 받았던 차고에 대해 새삼 주택소유주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자동차가 대형화되고 자가용이 늘어난 만큼 각 주택의 차고 크기는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주택소유주들의 욕구를 반영, 한 대형 가전업체는 차고용 가전제품 생산 계획까지 발표했다. 차고의 이모저모에 대해 알아본다.


잡동사니 창고로 전락한 차고를 정돈하고 싶어도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몰라 막막해 하던 주택소유주들은 이제 고민을 접어도 될 것 같다.
미 가전제품 제조사의 대명사인 월풀이 텐트, 톱, 자전거, 책 등 온갖 물건을 단정하게 정리할 수 있는 각종 오거나이저 제품과 차고용 가전제품을 생산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상표명은 ‘글래디에이터’(Gladiator).

견고한 디자인의 철제 제품이 주종을 이룰 글래디에이터 제품은 맥주 보관용으로 적합한 소형 휴대용 냉장고에서 연결해 쓸 수 있는 선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사이즈가 큰 제품들은 바퀴 달린 모듈 형태로 개인적 필요에 따라 자유자재로 조합해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다.
제품의 소매가격은 가장 싼 것이 10달러(고리), 비싼 것이 600달러(작업용 단풍나무 벤치) 정도.


월풀이 아무도 진출하지 않은 새 시장을 창출하기로 한 것은 전국 규모 조사에서 미국의 차고가 기본적으로 ‘정크룸’(junkroom)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오면서부터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원하는 미 차고 소유주의 2%에 평균 500달러의 신제품만 팔아도 총 6억5,000달러 규모의 거대 시장이 형성된다는 것이 월풀측의 계산이다.
현재 미국 가정의 차고는 총 6,500만개이며, 더 큰 차고에 대한 수요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지난 현재 3대 이상을 세울 수 있는 ‘점보차고’를 소유한 주택은 1992년 전체의 11%였으나 2001년에는 18%로 껑충 뛰었다.

대형 차고는 서부와 중서부에서 특히 인기다. 전국 주택건설협회에 따르면 동북부 신축 단독주택의 9%가 점보 차고를 갖춘 데 비해 중서부는 27%, 서부는 32%로 3배 이상이었다.

‘차고의 새 발견’을 저술한 키라 오벌렌스키는 “요즘의 차고는 ‘거라지마할‘(Garagemahal)이라고 부를 만하다”며 “거라지가 커진 가장 큰 이유는 차가 대형화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예를 들어 1917년 포드 T의 전장이 11피트 2.5인치였던데 비해 오늘날의 포드 엑스피디션은 무려 17피트나 된다.
오벌렌스키는 사이즈가 커진 요즘 차를 세울 수 있도록 1918년생 주택 차고의 일부 공간을 증축했다.

대형 차고 선호현상은 여성들이 대거 산업현장에 나서기 시작하고 틴에이저들이 전례 없이 많이 운전대를 잡은 1960년대에 시작됐다. 보통 집 뒤편에 자리잡던 차고들이 앞쪽으로 나온 것도 이즈음이다. 하지만 차고 대형화와 관계없이 차고를 차를 세우는데 쓰지 않는 미국인들이 적지 않다.

전국 단독주택 차고의 절반 이상이 2대 이상을 주차할 수 있는 크기이나 용량만큼 사용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 1994년 연방 에너지부 연구에 따르면 2대 주차 가능한 차고가 있는 사람들의 25%는 전혀 차고 안에 차를 세우지 않고 있으며, 32%는 1대만 주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3대 주차 가능한 차고를 소유한 주택소유주들의 활용도는 더 낮아서 13%만이 3대를 차고 안에 넣고 있었다.

차를 세우지 않은 남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잡동사니이고, 월풀은 이 공간의 주인들인 자녀 딸린 35~64세 기혼남성을 주 공략 대상으로 삼고 있다. 자체 조사 결과 “차고는 내 공간”이라고 답한 여성이 10%인 반면 남성은 무려 57%에 달했다.


미시간주 벤튼하버에 본사를 두고 있는 월풀은 새 상품 홍보를 위해 10월부터 대대적인 광고 캠페인을 펼친다.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패밀리 핸디맨’ ‘파퓰러 미캐닉스’ 등의 남성잡지가 주요 매체. 글래디에이터 제품은 우선 미국 2위 주택자재 소매체인인 ‘로우스’(Lowe’s)를 통해 판매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거라지 상품 마켓’을 창출하려는 월풀의 노력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장애가 많다고 말한다. 최대 장애는 뒷마당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 9.11 테러 이후 미국인들은 전에 없이 많은 시간을 집에서 보내고 있다. 특히 메모리얼 데이와 독립기념일 연휴에는 뒤뜰에서 바비큐를 하며 가족들과 어울렸다. 한 전문가는 “뒷마당에 그릴을 설치하고 있는 미국인들로 하여금 차고용 가전제품을 사게 하는 일이 녹록치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하나의 문제는 남부와 남서부의 열기. 대부분 냉방이 돼 있지 않은 후끈한 차고에서 남성들이 과연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겠느냐는 것이다. “북부에서조차 여성들이 차고 안에 세탁실을 두는 것을 별로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던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문가들의 우려 섞인 시각에도 불구, 미국인들은 카펫을 깔고 자녀들을 놀게 하고 목공제품을 만드는 등 차고와 뗄 수 없는 사이여서 월풀의 도전은 주택 소유주들에게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김장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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