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원칙·투명성 잃은교회 생명같은 믿음 없지요”

2002-07-0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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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기독교계 부패상 질타 손봉호 교수 인터뷰

-월드컵으로 한국인들이 대단한 결집력을 보였습니다. LA에서도 1세, 2세 할 것없이 응원열기가 뜨거웠는데요, 하나의 행사라기보다는 거대한 사건이며 현상이었다고 보여집니다.
▲스포츠는 현실과 달라 룰이 있고 적과 아군이 극명하기 때문에 누구나 열광하게 되지요. 첫 판에 졌으면 이런 현상이 안 일어났을 겁니다. 이번 월드컵은 한국인 전체가 가진 열등의식을 극복하게 해주었다고 봅니다. 결과적으로 긍지와 자신감을 갖게되었고 행사의 재정면에서는 적자였지만 정신적으로 대단한 이익을 보았습니다.

-요즘 FIFA 바로세우기운동을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어떤 운동입니까?
▲피파가 너무 부패돼있어 투명하게 일하자는 것입니다. 월드컵 자체가 타락한 모임이죠. 스포츠는 즐기는 것이 목적인데 현대 스포츠는 스포츠가 아니라 장사예요. 나이키, 아디다스 같은 상표가 판을 치고 엄청난 돈과 상업주의가 지배하면서 스포츠가 심하게 부패했습니다.

-하지만 월드컵 열기가 이렇게 뜨겁고 모두 즐거운 시간을 가졌는데 그 운동이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을까요?
▲영향력은 거의 없지만 아주 작게나마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독일과 일본, 한국의 시민그룹들이 협력해 운동하고 있어요. 기독교인은 문화가 잘 못되거나 대중이 오도될 때 잘못된 것은 잘 못 됐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붉은악마 응원단의 이름을 놓고 이곳에서는 아직도 찬반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 작은 것 갖고 신경 쓸 때입니까? 훨씬 더 중요하고 더 큰 잘못을 비판할 것이 많은데 그런 것은 말 한마디 안 하면서 애칭이나 갖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소아병적입니다. 상업적인 문화전체에 열광하고 16강에 들게 해달라는 한심한 기도나 하는 목회자들에게 차라리 피파에 대해 비판하라고 해야합니다.

-사회에서 기독교의 영향력이 점점 약화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교회가 세속화돼서 그렇습니다. 돈, 숫자, 명예를 좋아하다 보니 무시당하고 도덕적으로도 권위를 잃었지요. 그러니 비판의 소리를 못 내는 것입니다.

-기업화된 대형교회들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국교회에 미래가 있습니까?
▲제 할일을 하는 소수의 그리스도인 때문에 한국교회는 괜찮습니다. 원칙대로 목회하는 교회들이 조금씩 성장하고 있어요. LA에도 그런 교회들이 꾸준히 늘고 있을 겁니다. 중요한 것은 교회가 컸을 때 유혹에 안 넘어가야 돼요. 예배당이나 크게 짓고 하면 소용없지요.

-한국교회를 바로 세우려면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요.
▲세계 어느 나라도 교회에서 세금을 거두지는 않습니다. 비영리 기관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목회자들은 세금을 냅니다. 소득이 있으면 내는 것이 당연하니까요. 그런데 목회자가 세금 안 내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합니다. 그건 탈법이며 위법입니다. 물론 자원해서 내는 사람도 드물게 있긴 합니다만. 독일에서는 교회가 세금을 안 내는 대신 들어온 돈을 제대로 썼는지 국가가 엄격하게 조사합니다. 우리도 그거 해야됩니다.

-많은 교회와 기독교 단체들이 사회적으로 신뢰를 얻지 못하는 데 반해 기윤실이나 밀알, 아이들과 미래 등이 좋게 평가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봅니까?
▲원칙과 투명성을 지키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는 내가 하고 있는 모든 단체들에게 다른 것보다 투명성을 꼭 지키라고 강조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믿어주니까요. 믿음을 얻는 것은 생명과도 같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선 양보와 타협을 하지 않습니다. 밀알선교단은 정부의 감사외에도 외부에서 감사를 다시 받아 더블 체크합니다. 일부러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철저하게 감사받는 것이죠. 교회에도 그런 투명성이 있어야 할텐데 그 점이 안타깝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투명성을 중요시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까?
▲한국문화의 가장 큰 결점이 투명성의 결여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민족은 거짓말이 몸에 배어있습니다. 원래 안 그랬는데 일제시대를 지나면서 생존을 위해 거짓말하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미 한일합방 전에 도산 안창호 선생은 조선이 거짓말 때문에 망한다고 통탄했고 1600년대 영국사람 하멜이 쓴 표류기에도 ‘조선사람은 거짓말과 도둑질을 일삼으며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묘사돼있는걸 보면 우리 민족은 원래 정직하지 않았습니다.

-왜 우리 민족이 거짓말을 잘 한다고 생각합니까?
▲종교와 관계가 있습니다. 서양문화가 죄의식의 문화(guilt culture)인 반면 동양문화는 수치의 문화(shame culture)입니다. 서양인들은 원칙에 어긋나거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었을 때 죄의식을 갖지만 동양인들은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것이 양심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안보면 무엇을 해도 상관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체면을 강조하게 되고 이중적이 되는 것이죠.


-최근에 더 나빠진 것은 아닙니까?
▲아니요. 차라리 요즘 더 정직해졌다고 봅니다. 전반적으로 우리 사회는 더 좋아지고 있어요. 사회의 부패상이 요즘 더 많이 보이는 것은 눈에 노출되기 때문이지, 특별히 부패가 전보다 많아진 탓은 아닙니다. 민주주의의 좋은 점은 부패를 막는 체크 앤 밸런스가 제도화되어 있다는 점인데 여기에 순수한 시민운동들이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손교수를 보는 시각은 보수와 진보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교수님 자신은 어떻게 평가합니까?
▲신앙과 개인 윤리면에서는 굉장히 보수주의자입니다. 예를 들어 성윤리나 이혼문제는 절대 보수적 입장이지요. 그러나 사회문제에 관해서는 진보적입니다. 통일문제에 관해서는 햇볕정책을 지지하고, 사회가 약한 사람을 돌보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양보하지 않습니다.

-햇볕정책을 지지한다면 바로 지난 주 있었던 남북교전을 어떻게 봅니까?
▲북한 내부의 심각한 갈등으로 빚어진 사건이 아닌가 추측합니다. 개방파를 억누르기 위해 강경파가 저지른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남한이 강경하게 나가면 궁극적으로 우리만 피해를 봅니다. 오래 걸리더라도 조금씩 개방을 유도해 평화롭게 통일해야지요.

-해외 교포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까?
▲한국인과 그리스도인의 긍지를 지켜 자존심을 갖고 떳떳하라, 미국의 덕을 보는 민족이 아니라 이익을 끼치는 민족이 되라, 원칙을 지키고 정직하고 조금 손해보며 살라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교포 부모들과 교회들이 자식 교육을 그렇게 시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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