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거래일 연속 1,500원대
▶ 주가·경상수지·성장률 호조에도 원화 실질가치 17년내 최저 수준
▶ 외인 리밸런싱·전쟁은 단기 요인
▶ 수출대금 달러보유 등 복합 작용
‘코스피 8000선 돌파, 역대 최대 경상수지 흑자, 올해 1분기 성장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
최근 한국 경제·금융 지표가 고공 행진하고 있는 가운데 유독 원·달러 환율만 맥을 못 추는 기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통상 환율에는 한 국가의 경제 체력이 반영되기 때문에 국가 경제가 고성장세를 보이면 통화 가치도 강세를 보이는 게 기존의 상식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환율이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나 보던 달러당 1,500원 선을 장기간 웃돌면서 원화의 실질 가치가 17년 만에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중동발 지정학 리스크 등의 단기 요인도 있지만 외환시장을 둘러싼 수급 지형 변화, 반도체를 제외하면 허약한 경제 펀더멘털이 고환율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26일 서울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의 주간 거래 종가는 전 거래일보다 12.9원 내린 1504.3원에 거래를 마쳤다. 1거래일 만에 하락세로 전환했지만 7거래일 연속 1,500원을 웃돌았다. 올 들어 가장 오랜 기간 1,500원 선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원화값은 단순히 미 달러화 대비 절하되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실질 가치도 속절없이 하락하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원화의 실질실효환율 지수는 85.06(2020년=100)으로 금융위기 시절인 2009년 3월(79.31) 이후 가장 낮다.
실질실효환율은 교역 상대국과의 환율·물가 수준을 반영해 자국 통화의 실질적 구매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지수가 낮을수록 국제시장에서 낮게 평가된다는 의미다. 원화의 실질가치는 지난해 10월 이후 6개월째 위안화보다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원화 가치가 타격을 받는 데는 단기적으로 중동 전쟁 리스크가 자리잡고 있다. 글로벌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고, 특히 산유국인 중동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유가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원화가 매도 타깃이 될 확률이 크다.
최근 외국인의 한국 주식 매도도 영향을 줬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 당시 2,300조원이었던 코스피 시가총액이 현재 6,300조원으로 불어난 가운데 올 상반기 외국인 매도액 110조원은 외국인 평가액 증가분의 10% 수준이다. 재정경제부는 “이러한 외국인들의 리밸런싱 매도가 달러 환전 수요를 키워 단기적으로 환율을 끌어올렸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단기 급등을 설명하는 데는 유효하지만 원·달러 환율의 구조적 상단 자체가 올라간 이유까지 설명하지는 못한다. 전문가들은 국내 경제주체들의 해외 투자 증가, 수출기업의 환전 행태 변화, 외국인의 채권시장 이탈 등 구조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맞물린 결과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올해 1분기 누적 경상수지 흑자는 850억330만달러(계절조정 기준)로 전 분기보다 133%나 증가해 분기 기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문제는 벌어들인 돈과 맞먹는 규모로 해외로 빠져나간다는 점이다. 해외 직접 및 증권 투자가 포함된 우리나라의 금융계정 순자산은 1분기에 654억2,000만달러에 달한다.
기업뿐만 아니라 서학개미·연기금까지 해외 투자를 늘린 결과다.
반도체·조선을 중심으로 한 역대급 수출 호조에도 환율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기업들의 환전 행태 변화 탓이기도 하다. 고환율이 지속될 것이라는 장기 기대 속에 수출 대금을 원화로 환전하거나 선물환 매도(환헤지)를 하지 않고 달러로 쥐고 있으려는 경향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주식 리밸런싱으로 빠져나가는 달러 매수 압력을 채권 유입이 받아주지 못하면서 환율 상승 압력이 고스란히 쌓이는 구조라는 지적이다.
근본적인 배경으로 한미 잠재성장률 역전도 거론된다. 올해 들어 한국 성장률이 높은 것은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절대적으로 의존한 결과일 뿐 근본적인 경기 기초 체력은 한국보다 경제 규모가 10배 이상 큰 미국에 못 미친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2023년부터 미국에 뒤처지고 있다.
이남강 한국투자금융지주 이코노미스트는 “2000년대 초반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5~6% 수준으로 미국의 3~4%보다 높았으나 그 격차가 점차 줄었고 현재는 미국이 앞선 상황”이라며 “한국 자산의 기대수익률이 미국보다 점차 낮아지고 있어 달러가 계속 빠져나가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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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한동훈·김혜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