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흙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두 줄로 늘어선 떡갈나무 사이로 남북전쟁의 흔적을 간직한 그리스 부흥 양식의 고택이 모습을 드러냈다. 윌리엄 포크너가 살던 집, 로윈 오크다. 순간 발코니 위에 승마복 차림의 포크너가 파이프를 문 채 서 있는 듯한 착각이 스쳤다. 세상과 거리를 두고 싶어 했던 그의 성격처럼 집은 숲 안 깊숙이 숨어 있었다.
1848년에 지어진 이 집은 포크너가 할리우드에서 번 돈 6천 달러로 사들여 형제들과 함께 직접 고쳤다고 한다. 집 이름은 프레이저의 『황금가지』에 등장하는 신화 속 나무에서 따왔다. 켈트 전설에서 로윈 나무는 안전과 평화를 상징하지만, 그가 이곳에서 써낸 작품들은 폭력과 몰락, 절망으로 가득했다. 그 모순이 오히려 포크너다웠다.
서재로 들어서자 벽난로 위 젊은 시절의 초상화가 눈길을 끌었다. 방 안에는 철도 사업가이자 소설가였던 증조부 포크너 대령의 초상도 걸려 있었다. 그는 조상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성 Falkner에 ‘u’를 더해 Faulkner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름을 바꾼다고 혈육의 굴레까지 지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책상 위에는 낡은 언더우드 타자기가 놓여 있었다. 그는 원고를 손으로 쓴 뒤 다시 타자로 옮기며 끝없이 고쳐 썼다. 여러 번 출판을 거절당했지만 결국 노벨문학상과 퓰리처상을 받았다. 방 구석에는 위스키 병들이 흩어져 있었다. 글을 쓸 때마다 술을 곁에 두었고, 작품이 끝나면 폭음으로 스스로를 무너뜨렸던 그의 삶이 떠올랐다.
노벨상 상금으로 꾸몄다는 개인 서재 벽에는 대작 『우화(A Fable)』의 줄거리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종이가 날아갈까 봐 아예 벽에 써버렸다는 메모들. 침대에 누워 벽을 바라보며 구상을 이어갔을 그의 집념이 느껴졌다.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한 작가의 치열한 고뇌가 전해졌다.
응접실의 낡은 전화기로 그는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인간은 연민과 희생, 인내를 통해 영원불멸한다고 말한 그의 수상 연설은 지금도 회자된다. 술과 절망 속에서 흔들리던 사람이 남긴 가장 숭고한 언어였다.
이층에는 그가 직접 그린 가상의 도시 요크나파토파 지도가 전시돼 있었다. 그는 작은 남부 마을을 거대한 문학 세계로 확장시켰다. 벽난로 옆에는 승마용 부츠와 넥타이가 놓여 있었다. 말을 사랑했던 그는 결국 낙마 사고 후유증 속에서 생을 마감했다.
포크너의 소설은 난해하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뒤섞여 흐르고, 한 문장 안에 삶의 모든 비극과 욕망을 담아내려 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쉽게 읽히지 않지만, 행간을 따라가다 보면 인간 존재의 깊은 심연과 마주하게 된다.
“윌리엄 포크너여, 안녕히. 벽에 가득 적어 내려간 당신의 열정을 가슴에 담아갑니다.”
돌아오는 길, 신발에 붉은 흙이 묻어 있었다. 털어내려다 그대로 두었다. 어쩌면 그 흙이야말로 포크너의 흔적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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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 수필문학가협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