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인 주민·업소들 “부랴부랴 대피… 삶의 터전 마비”

2026-05-26 (화) 12:00:00 노세희·황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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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학물질 위기 사태 현장

▶ 호텔·지인집 등 숙박 전전
▶ “언제 돌아가게 될지 막막”
▶ 일부 업소 임시휴업 속출
▶ 총영사관·한인 교계 지원

한인 주민·업소들 “부랴부랴 대피… 삶의 터전 마비”

대피 구역 시작점인 가든그로브 블러버드와 데일 애비뉴 교차로가 차단되면서 한인 업소 샤핑몰 진입도 막혀 있다. [황의경 기자]

지난 22일 시작된 가든그로브 항공부품업체 시설의 대형 탱크 화학물질 누출 위기 사태가 5일 넘게 이어지면서 강제 대피령이 내려진 가든그로브 및 인근 지역의 한인 주민과 비즈니스들이 일상 생활과 영업에 큰 타격을 입는 등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사고 5일째인 25일 현재 대피 구역은 한인 상권과 주거지역이 밀집한 북쪽 트래스크 애비뉴, 남쪽 볼 로드, 동쪽 밸리뷰 스트릿, 서쪽 데일 스트릿 사이 구간이며, 가든그로브 외에도 스탠튼, 사이프러스, 웨스트 애나하임, 부에나팍 일부 지역까지 확대됐다. 이에 따라 이 구역 내 한인 주민들은 부랴부랴 호텔로 거처를 옮기거나 가족이나 친척 집에 임시 거주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일부 주민들은 당국이 마련한 임시 셸터로 옮기거나 차량 숙박에 의존하고 있다.

스탠튼에 거주하는 양모세(50)씨는 지난 21일 오후 갑작스럽게 내려진 대피 명령에 황급히 집을 떠나야 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양씨는 “오후 5시가 되기 직전 경찰이 집으로 찾아와 바로 대피하라고 했다”며 “간호사인 아내를 대피 지역 밖 직장에 데려다 준 뒤 아들과 함께 밖에서 시간을 보내며 상황이 빨리 끝나기만 기다렸다”고 말했다. 이후 같은 날 밤 9시께 귀가가 허용돼 집으로 돌아갔지만, 다음날인 22일 새벽 6시 다시 대피 명령이 내려지며 재차 집을 떠나야 했다.


양씨는 현재 지인의 집에 머물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아들은 친구 집으로 보냈는데, 그곳에 비슷한 상황의 아이들 10여 명이 함께 모여 있다”며 “힘든 상황이지만 대피 명령이 없는 지역의 지인들 도움으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대피 상황은 상당히 긴박했다고 양씨는 전했다. 그는 “거동이 불편하거나 뉴스를 제대로 접하지 못한 어르신들도 계실 것 같아 집을 떠나기 전 연락처가 있는 분들에게 일일이 연락해 대피 사실을 알렸다”며 “우리 단지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대부분 친척이나 지인 집으로 대피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대피 장기화에 따른 경제적·생활적 부담도 크다고 양씨는 호소했다. 그는 “우리는 운 좋게 지인 집에서 지내고 있지만 언제 집에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호텔에 머무는 것은 비용 부담이 너무 크다”며 “밖에서 계속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점도 쉽지 않아 다들 고생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 “대피소에 있는 주민들은 침대나 담요 등 기본 시설도 열악하고 샤워조차 제대로 못하는 상황이라고 들었다”고 전했다.

이번 사고 관련 대피 구역 내에는 한인 식당과 소매업체 등 한인 비즈니스들도 상당수인데, 한인 업주들은 어쩔 수 없이 임시 휴업에 들어간 상황이며, 대피 구역 밖의 인접 지역 사업체들도 이번 사태로 뚝 끊긴 고객들의 발길에 울상을 짓고 있다.

가든그로브의 한 샤핑몰 내 한인 업주는 25일 “메모리얼 연휴라 원래 차가 빽빽하게 주차되어 있어야 정상인데, 이번 사태로 사람이 없다. 영업을 포기하고 그냥 문을 닫은 업소들도 많다”고 전했다. 대피 구역 한블럭 떨어진 곳에서 문구점 운영하는 또 다른 한인 업주는 평소 대비 손님들이 10%도 안나오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LA 총영사관은 이번 사고와 관련한 한인 피해 및 대피 상황 파악에 나섰다. 권민 언론담당 영사는 “사태 발생 직후 총영사관 내 사고대책반을 즉시 구성하고, 홈페이지 등을 통해 안전 유의 공지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총영사관은 관련 영사들을 현장에 급파해 대피소 방문과 현장 확인을 진행했으며, 오렌지카운티 한인회와 가든그로브시 등 관계 기관과 소통 체계를 구축해 한인들의 피해 여부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총영사관 측은 “피해 사례가 확인될 경우 필요한 영사 조력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인 교계도 피해 한인들을 위한 즉각적인 지원에 나섰다. 남가주사랑의교회 이원준 담임목사는 25일 “지역구 목회자들이 피해 가정을 직접 찾아다니며 지원금을 전달하고 있다. 또 피해 가정에 가족이나 친지가 없는 경우 교인들이 거처를 제공하고 있다”고 전했다.

<노세희·황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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