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경] 유럽의 세입자 오디션
2026-05-18 (월) 12:00:00
최형욱 / 서울경제 논설위원
주거난을 겪고 있는 유럽 일부 대도시에서는 일종의 ‘세입자 오디션’이 흔하다. 독일 베를린·뮌헨·프랑크푸르트 등의 경우 임대주택을 구하려면 ‘슈파’라는 신용평가서, 최근 3개월 치 급여명세서나 소득증명서 등을 제출해야 한다. 지원자가 너무 많다 보니 적당한 세입자를 1차로 골라내기 위해서다. 슈파에 과거 월세 미지급이나 임대주택 파손으로 인한 분쟁 기록이 있다면 세입자로 선택되기 힘들다. 집주인은 서류 통과자들에게 집을 한꺼번에 보여준 뒤 현장 면접을 거쳐 세입자를 고른다.
■프랑스의 파리·리옹·마르세유·보르도 등에서도 집을 보기 전부터 3개월 치 급여명세서나 소득세신고서, 고용 증명 등으로 구성된 ‘도시에(서류 묶음)’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외국인 유학생은 재정증명서, 보증인 등 외에 프랑스어로 된 간절한 자기소개서를 첨부하라는 조언도 ‘꿀팁’처럼 전해진다. 영국 런던에서도 소득·신용 정보와 함께 이전 집주인의 평판까지 요구하는 관행이 퍼져 있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는 월 소득이 월세의 3~4배에 못 미치면 서류 단계부터 탈락될 가능성이 크다.
■이들 도시에서 세입자 되기가 힘든 이유는 도심 개발 지연에다 이민 증가, 인구 집중 등으로 주택 공급이 부족해서다. 강력한 세입자 보호 정책도 한몫했다. 독일·프랑스의 경우 세입자 선발 과정이 까다롭지만 일단 계약을 맺은 뒤에는 세입자를 내보내기 힘들고 임대료 인상도 엄격히 제한된다. 독일의 임대차계약은 ‘무기한’이 일반적이고 세입자 평균 거주 기간이 12.8년에 이른다. 세입자가 임대료를 내지 않고 버티면 손해가 막심한 구조다.
■한국도 최근 다주택자 규제 등으로 전세난이 심해지면서 집을 보기 위해 같은 시간 여러 팀이 대기하거나 세입자를 골라 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 미취학 아동이나 반려동물을 키우는 세입자, 노인·장애인 등이 기피 대상이라고 한다. 지난달에는 임차인의 월세 지불 능력을 점수화한 ‘안심 월세’ 서비스도 등장했다. 서울 집값을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취약 계층의 주거 불안 해결이 시급한 때다.
<최형욱 / 서울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