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존재하고 이어지는 데에는 어머니의 역할이 크고도 깊다. 한 생명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산고의 고통도 크지만, 그보다 더 긴 시간 동안 자식을 키우며 감당하는 수많은 희생과 사랑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세상에는 수많은 노래가 있지만 유독 ‘어머니’를 노래한 곡들이 많다. 어머니의 은혜는 끝이 없고, 그 깊이는 헤아릴 수조차 없다.
모든 어머니가 훌륭히 사는 것은 아니고 더 훌륭한 아버지도 많지만 친구 어머니의 사랑은 세상 누구와도 비교할 수없다. 친구의 어머니를 통해 그 사랑과 신앙의 깊이를 생각하게 된다. 하느님의 마음으로 살아가시는 친구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동시에 나 자신의 삶을 생각하게 된다.
친구는 미국 L.A.에 살고 있었다. 동쪽과 서쪽에 흩어져 살던 동창 몇이 모여 여행도 하고, 함께 운동도 하며 건강하게 지내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활기차던 그가, 만나고 헤어진지 불과 세 달 만에 폐암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우리는 그의 마지막을 지켜보기 위해 죽기 며칠 전 그가 사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그의 어머니를 처음 뵙게 되었다.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 앞에서 누구보다 큰 슬픔을 안고 계실 텐데도, 어머니는 흐트러짐 없이 방 안에 단정히 앉아 기도를 드리고 계셨다. 그 모습은 90 가까운 연세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고요히 앉아 계셨다.
친구의 아버지는 한국에서 군인으로 복무하시다가 퇴역하시고 먼저 세상을 떠나셨고, 이후에도 어머니께는 연금이 지급되고 있었다. 또한 미국에서는 더 많은 지원과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되셨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 모든 것을 사양하셨다. “나는 한국에서 나오는 연금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하시며, 미국에서 받을 수 있는 혜택을 끝내 받지 않으셨다.
그 이유를 들었을 때 나는 많은 놀람을 느꼈다. “내가 받지 않은 돈은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에게 돌아갈 것이다.” 이 한마디에는 그분의 삶 전체가 담겨 있었다.
우리는 흔히 조금이라도 더 얻기 위해 애쓰며 살아간다. 때로는 가진 것조차 감추고, 더 많은 혜택을 누리려 하기도 한다. 나 역시 그런 상황에 놓였다면 그렇게 하였을 것이다. 아마 받을 것은 받아서 넉넉히 쓰다가 남은 돈으로 적선도 하며 호기부리며 살아 갈 것이다. 그게 세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다.
그래서 더더욱 그 어머니의 삶이 놀랍고도 존경스러웠다.
그분은 단지 검소하게 사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몫을 기꺼이 내려놓고 더 어려운 이웃을 먼저 생각하셨다.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인가. 세상에 이름난 성인이나 수도자, 성직자나 할 수 있는, 그렇게 살아내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돈으로 문제되는 사람 많고, 목숨이 다 되어 깨닫고 내려놓는 훌륭한 삶이 그나마 있다.
장남이었던 친구와 함께 살며 가족의 사랑 속에 지내셨지만, 그 생활이 결코 돈이 넘쳐나게 넉넉하거나 풍족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한 번도 더 가지려 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늘 나누는 삶을 선택하셨다.
그 어머니께서 이제 90을 넘기시고 여전히 꼿꼿이 살아 계신다. 깊은 신앙 안에서 살아오셨고, 많은 자손들의 사랑을 받으며 사신다. 나는 그분이 분명히 이 땅에서의 삶처럼, 나중에 하늘나라에 가셔도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자리에 머무르실 것이라 믿는다.
그분이 보여주시는 삶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된 신앙이었다. 나는 과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훌륭하신 어머니, 종교는 틀리지만 내가 믿는 가톨릭에서는 5월이 성모마리아를 생각하며 드리는 성모성월이라서 인지 친구 어머님의 훌륭한 삶이 마음에 깊이 새겨진다.
당신의 삶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이 되고 있습니다. 당신이 계시기에, 우리는 조금 더 따뜻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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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혁 패사디나,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