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을 모신다”는 말이 이제는 점점 낯설게 들린다.
한 지붕 아래 여러 세대가 함께 살아가던 시절은 멀어지고, 각자의 삶이 더 중요해진 시대 속에서 ‘모신다’는 표현은 어딘가 무겁고 부담스러운 말이 되어버렸다. 짧은 전화 한 통의 안부 인사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를 향한 마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그 말 속에 담긴 따뜻함과 책임, 함께 살아가는 온기를 우리가 너무 쉽게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살고있는 아파트에서 이웃으로 지내는 영자 씨는 늘 외롭고 힘들다고 말하곤 했다. 때로는 이유 없이 눈물을 흘리며 혼자의 삶을 비관하기도 했다.
복도에서 인사를 나누던 그녀는 어느 날, 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늘 어딘가 젖어 있던 눈빛 대신, 햇살을 머금은 듯 환하게 웃고 있었다. 꽃구경을 간다며 평소보다 조금 더 진한 입술빛을 바르고, 화사한 옷을 정성껏 차려입은 모습이었다.
거울 앞에서 몇 번이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는 오랜만에 스스로를 아끼는 사람의 기색이 묻어 있었다. 작은 설렘이 발끝까지 전해지는 듯 걸음마저 가벼워 보였다. 마치 오래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열고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사람처럼.
그 변화의 이유는 지역의 ‘센터’였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생각보다 훨씬 풍요롭다고 그녀는 말한다. 하루의 일정이 정해져 있고, 따뜻한 식사와 사람들의 웃음이 오간다. 무엇보다 작은 대화 하나까지도 누군가와 이어져 있어 외로움이 스며들 틈이 적다.
특히 그녀는 한 간병사를 “수호천사 같다”고 표현했다. 다정한 눈빛으로 다가와 말없이 손을 잡아주고, 필요한 순간을 먼저 알아채 곁에 서 있는 사람. 그 존재는 단순한 도움이 아니라 그녀의 하루를 지탱해주는 따뜻한 울타리였다.
영자 씨는 문득 깊은 감사의 마음을 느낀다고 했다. 삶의 끝자락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처럼 느껴지는 시간 속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스스로의 일상을 지켜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그녀는 말한다. 자식들에게 기대지 않고도 그들의 삶을 온전히 지켜주는 부모로 살고 싶다고. 사랑하기에 더 짐이 되지 않으려는 마음, 그 마음이 오히려 더 깊은 사랑으로 느껴진다.
이곳에는 노인들을 위한 다양한 제도와 선택지가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낯선 언어와 정보 속에서 자신에게 맞는 도움을 찾아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럼에도 하나하나 알아가며 나에게 맞는 길을 찾아가는 과정 역시 또 하나의 배움이다.
어쩌면 그것은 삶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또 다른 인내와 지혜인지도 모른다.
이제 영자 씨의 하루는 외로움이 아니라 감사로 채워지고 있다. 누군가의 딸이자 어머니였던 시간을 지나, 한 사람의 온전한 삶으로 다시 서 있는 지금, 그녀는 스스로를 지켜내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노년은 의존의 시간이 아니라 또 다른 자립의 시간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삶은 생각보다 훨씬 따뜻하고 존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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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발렌티나 페어팩스,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