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적 복수국적 폐해, 원점부터 재검토하라
2026-04-24 (금) 12:00:00
선천적 복수국적 제도를 둘러싼 미국 등 재외동포 사회의 불만이 임계점에 이르고 있다. 병역 형평성을 내세운 제도가 해외 출생 한인 2·3세들에게 과도한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반복돼 왔지만, 한국 정부의 대응은 여전히 “국적이탈 신고제도와 예외적 허가제도가 이미 운영 중이며 병역의무의 공평성 등을 고려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원론적 답변에 머물고 있다. 제도 개선 요구에 대해 법무부가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것은 문제 해결 의지보다 현상 유지에 방점이 찍혀 있음을 보여준다.
현행 국적법은 해외 출생 남성에게 만 18세 이전 국적이탈 신고를 요구하고, 이를 놓칠 경우 장기간 병역 의무를 부과한다. 그러나 복잡한 행정 절차와 긴 심사 기간, 부모의 혼인·출생신고를 선행해야 하는 구조는 현실과 괴리돼 있다. 해외에서 성장한 청년들에게 사실상 선택권 없는 의무를 부과하는 구조는 ‘권리 없는 의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더구나 부모 사망 혹은 이혼 등으로 행정 절차 자체가 불가능한 사례까지 발생하면서 제도의 경직성과 비현실성은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제도가 목적을 넘어 새로운 불공정을 낳고 있다면, 그 자체로 재검토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심 현안에 대해 구체적 대안 없이 답변만 반복하는 방식으로는 동포사회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선천적 복수국적 제도 자체가 문제”라는 현장의 목소리를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제 필요한 것은 부처별 단편적 대응이 아니라 범정부 차원의 근본적 재설계다. 재외동포 정책을 총괄하는 협의 구조인 재외동포 정책실무위원회와 청와대 주도의 범부처 협의체가 중심이 되어, 선천적 복수국적 제도를 원점에서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한국 정치권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국적 자동상실제’ 등 대안이 논의만 되고 입법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현실은 재외동포 권익이 여전히 후순위에 머물러 있음을 방증한다. 지금과 같은 ‘원론적 답변’의 반복은 문제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방치하는 것에 가깝다. 재외동포 사회가 요구하는 것은 근본적인 변화다. 정부와 정치권은 책임 있는 결단으로 제도의 방향을 다시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