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단상] 소실점이 말하는 것
2026-04-24 (금) 12:00:00
이효종 수필가
자전거 타기에 좋은 봄날이다. 자전거를 타고 육교를 지날 때 서프라이너 열차가 육중한 소리를 내며 쏜살같이 지나간다. 자전거에서 내려 잠시 휴식을 취했다. 샌디에이고에서 로스앤젤레스를 향해서 올라가는 북행 열차다. 약 400마일에 이르는 남가주의 서해안 쪽을 연결하고 있다. 기다란 열차는 곧게 뻗은 선로 위를 잽싸게 미끄러져 나갔다. 점점 시야에서 멀어지더니 아득한 곳에 이르자 점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 열차가 지나간 곳에는 선로만 덩그러니 남았다. 육교 밑에는 규칙적으로 놓인 침목 위에 두 개의 선로가 나란히 벌어져 있었다. 갈라진 선로는 북쪽을 따라 점점 좁아지더니 열차가 사라진 지점에서는 하나로 뭉쳐졌다.
평행을 이루며 뻗어있는 선로가 시야에서 멀리 떨어진 지점에서 하나로 만나는데 이 점을 소실점이라고 한다. 우리 눈이 삼차원 공간의 물체를 이차원 망막에 표현하면서 수렴되는 점이다. 어느 곳에도 멀리 눈을 돌리면 시야에서 소실점을 찾을 수 있다.
소실점은 사람 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가깝고도 멀다. 숲의 빼곡한 나무처럼 사람들은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함께 사는 가족이라는 나무들도 바람이 불면 요란한 소요가 일어난다. 나라 안팎의 뉴스를 들어보면 복잡한 일들이 한둘이 아니다. 개인 간의 시비는 말할 것도 없고 국가 간의 문제들도 수북한 낙엽처럼 지천으로 쌓여있다. 나와 아내는 아이의 진로 문제로 이견이 있었다. 아이의 진로가 불투명해지자 아내는 아이를 일종의 대안학교에 입학시켰다가 후에 의학 계열로 진학을 시키자고 했다. 내 생각에 대안학교는 시간과 돈의 낭비에 불과했다. 대안학교를 마치고 모두 의대에 갈 수 있다면 누가 의대를 못 가겠는가. 상당 기간을 우리는 갈등으로 홍역을 앓았다.
아이의 미래에 대한 염원은 똑같지만,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아서 이런 사달이 일어난다. 자기 생각이 아이를 위한 바른 접근이라고 철석같이 믿기 때문에 아이의 장래를 위한 본질을 잊고 서로가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였다. 조금 떨어져서 문제를 바라본다면 어느 중간 지점에서 서로의 이견이 좁혀지는 소실점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금리 인하에 관한 갑론을박이나 강도 높은 이민정책에 따른 불안감, 또는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문제도 다름이 없다. 사람이 사는 어느 지역이나 조직에서는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현상이다. 금리 변동에 관한 연방준비제도와 정부의 의견 차이가 혼란스럽다. 한쪽은 금리를 인하하여 현금의 유동성을 높여 경기를 부양시키자고 한다. 다른 한쪽은 그렇게 하면 물가가 올라 인플레이션으로 서민들이 고통받는다고 한다. 모두가 국민을 위하는 마음은 같지만, 방법론에서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이민정책이나 나라 간의 분쟁에도 양과 음의 영역이 명확하게 있다. 한쪽만 보고 내린 결정은 편향된 결정이다. 양편의 주장이 분명 차이가 있지만 접점을 찾기 위해서 서로가 상대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지혜가 필요하다. 시야를 바꾸어 조금 뒤로 물러나서 문제를 쳐다보면 어딘가 분명 소실점이 있다.
소실점은 바로 눈앞에서 찾을 수 없다. 뒤로 물러나서 멀리 보아야 한다. 그 안에 나와 당신이 공존하는 영역이 있다. 서로가 소실점을 찾기 위해 양보한다면 그곳이 우리의 이상향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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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종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