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숙의 문화살롱
2026-04-21 (화) 08:13:31
도정숙
▶ NamJoon Baik: Rewind/Repeat-Gagosian Gallery, Seoul-
▶ ‘미디어의 예언자, 백남준’
백남준(1932-2006)의 첫 비디오 작품이 <백남준: 되감기/반복>이라는 전시로 서울에 도착했다. 이번 전시는 백남준 재단이 그의 서거 20주년을 맞아 서울에서 개최한 전시다. 재단의 공식 파트너인 세계적인 갤러리 가고시안이 주최했고, 백남준의 1960년대 초기 실험작부터 후기 작품에 이르기까지 총 11점을 아모레 퍼시픽 미술관(APMA)에서 선보였다. 전시 제목 ‘Rewind / Repeat’은 시간을 되감아 재생하다라는 의미다. 백남준이 다뤄온 시간, 기술, 이미지의 순환 구조를 그대로 반영한다. 텔레비전이라는 매체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그의 시도는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디지털 환경을 예견한 실험이었다.
도쿄대학교에서 음악과 미술을 공부한 백남준은 1950년대 초부터 기술과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을 했다. 1956년 독일로 건너가 플럭서스 그룹에 합류했으며, 그로부터 8년 후 뉴욕으로 이주하여 회화, 퍼포먼스, 전자 매체를 아우르는 독자적인 언어를 구축했다. ‘비디오 아트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는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의 변화를 예견하고, 기술이 문화의 흐름을 형성해 갈 방향을 미리 내다보았다.
<살아있는 조각을 위한 TV브라>는 브래지어에 소형 흑백 텔레비전 두 대를 단 작품이다. 음악가이자 퍼포먼스 작가인 샬럿 무어만을 위해 제작됐다. 무어만은 1969년 이 작품을 처음 착용한 뒤 첼로 연주를 했다. 연주에서 발생하는 소리가 텔레비전 화면 이미지를 변화시켜 백남준이 추구한 ‘전자기기의 인간화’를 구현했다.
<런던과 해외를 위하여(우편함)>는 한국에서 처음 소개됐다. 일반적인 우편함 모습인데 편지를 넣는 구멍에 있는 화면으로 영상이 나온다. 이 영상은 백남준이 만든 것이 아닌, 작품이 설치된 지역 방송사에서 송출하는 실시간 방송이다. 과거에 제작됐지만 실시간 방송을 통해 현재성을 유지한다. 1982년 휘트니 미술관의 큐레이터 존 한하르트가 기획한 백남준 회고전을 위해 제작된 작품 중 하나다. 당시 출품작 가운데 현재까지 형태가 온전하게 남아 있는 단 세 점 중 한 점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골드 TV 부처>는 2005년 작으로 백남준의 대표 연작인
의 하나다. 금박을 입힌 채색 청동 불상이 TV 앞에서 명상하고 있다. 이 모습은 폐쇄회로 TV 카메라에 담겨 불상 앞 TV로 송출된다. 관람객이 카메라 앞에 얼굴을 들이밀면 TV에는 불상 대신 관람객의 모습이 등장한다. 고대의 영성과 현대 미디어, 동양과 서양의 사유가 교차하는 지점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이번 전시는 1960년대 초기 작업인 <미디어 샌드위치>부터, 중고 시장과 상점에서 수집한 빈티지 라디오들을 활용한 <베이클라이트 로봇>이나 조각된 목재 회화 <오케스트라>와 2000년대 작업인 <케이지 컴포지트>까지 이어진다. 음악과 조각, 퍼포먼스와 전자기술을 넘나드는 이 작업들은 백남준이 장르의 경계를 어떻게 확장해 왔는지를 보여준다.
잡지, 레코드판, 인쇄 이미지 등을 결합한 초기 작업은 이미 매체의 혼합과 재구성을 시도하고 있었고, 이후 영상과 조각, 퍼포먼스가 하나의 언어로 통합된다. 지금의 미디어 아트가 가진 복합적인 구조는 이 시기부터 백남준에 의해 예고되어 있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가고시안 갤러리 디렉터 닉 시무노비치는 “백남준은 미래에는 뉴욕 전화번호부의 번호만큼 수많은 TV 채널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금 우리는 인스타그램, 유튜브, 틱톡 등을 통해 누구나 자기만의 채널을 갖고 있다. 그는 미래를 예견한 선지자 같은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기술과 예술의 관계를 새롭게 사유할 수 있는 계기를 주었던 백남준, 그의 실험 정신을 엿보게 되는 이 전시는 5월 16일까지 진행된다.
<도정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