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사가 방영 중인 『흑백요리사 시즌 2』는 예능과 요리, 서바이벌과 리얼리티가 한데 섞여 쫄깃쫄깃한 재미를 선사한다. 경쟁에서 이기려는 요리사의 열기와 스트레스가 화면을 넘어 시청자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온다. 금방 만든 요리를 심사 위원 앞에 내놓고 서 있는 그 짧은 순간이 그들에겐 영원의 끝을 보는 심정이리라. 심사원의 입이 움직일 때마다 요리사들의 눈빛이 흔들리고 입이 바싹바싹 타는 모습이다. 그들의 표정과 숨결만으로도 요리는 결국 사람을 드러낸다는 생각이 스친다.
굽고, 튀기고, 찜통에서 피어오르는 김이 화면에 비치면 어떤 요리가 탄생할지 나도 모르게 숨을 고르곤 한다. 프로의 손끝에서 완성한 요리는 눈을 황홀하게 한다. 숟가락이 심사 위원의 입으로 향하는 순간, 내 입맛도 다셔지고 어떤 맛일까 궁금해진다. 백종원의 입으로 면이 후루룩 들어가는 찰나,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로 향한다. 요리는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백수저 20명과 흑수저 80명으로 시작된 게임은 어느새 세미파이널에 7명만 남았다. ‘무한 요리 천국’이라는 이름의 미션은 180분 안에 요리 개수에 상관없이 심사 위원에게 최고점을 받으면 된다. 싱싱한 대게와 랍스터, 갈비와 고기, 생선이 산처럼 쌓여 있으나, 무엇을 집어야 할지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천국보다 지옥에 가깝다. 이런 순간에 필요한 건 욕심이 아니라 빛의속도로 내려치는 아이디어와 바위처럼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다.
내가 주목한 사람은 최강록이다. 다른 이들은 이미 여러 가지 요리를 선보였고 현재 아무개가 몇 점으로 선두라는 발표가 나도, 그는 조리대에 고개를 묻은 채 자신의 리듬대로만 움직인다. 여러 해산물과 버섯과 다시마를 각기 다른 소스로 조려 ‘무시즈지(찜 초밥)‘를 만들고 있다. 밥 위에 재료를 올리는 데만도 20분이 걸렸다. 몇 초를 남기고 요리 하나가 겨우 완성되었을 때 나도 모르게 긴 숨을 내쉬었다.
요리의 심사 기준은 주재료 활용도, 창의성, 완성도. 맛은 기본이다. 까다로운 심사 위원 안성재는 “부재료는 하나하나의 맛은 느껴지지만, 튀지 않고 메인 재료를 감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최강록의 요리는 재료가 너무 많았고, 이미 폭식을 당한 심사원의 입맛을 어찌 사로잡을 것인지? 공든 탑이 무너졌다는 나의 예상을 깨고 그는 185점이라는 최고점수를 받았다. 재료 하나하나가 제 몫을 다한 것일까. 그는 곧바로 최종전으로 향했다. 발코니에서 일대일로 경쟁할 상대가 누가 될지 ‘무한 요리 지옥’ 게임을 내려다보고 있다.
남은 6명이 ‘무한 요리 지옥’에서 경쟁할 메인 재료는 당근이다. 늘 부재료로만 머물렀던 당근이 “나는 당근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요리를 30분 안에 만들어야 한다. 30분마다 한 명씩 탈락하는 미션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기적이다. 여섯 당근요리가 네 차례 쏟아진 끝에 두 사람만 남았다. 한국 중화 요리계의 살아있는 전설, 후덕죽(75세, 백)과 자신만만한 젊은 서양 요리사 ‘요리괴물(37세, 흑)’이다.
후덕죽은 당근을 국수처럼 길게 뽑아 찌고, 돼지고기와 붉은 양파도 길게 썰어 춘장에 볶아 짜장면을 만든다. 그가 왁을 들었다 놓았다 할 때마다 번들번들한 짜장 소스가 함께 흔들렸고 나의 침도 꿀떡꿀떡 목을 타고 내려갔다. 안성재가 맛을 본 후 “거의 면과 별 차이가 없다”라고 감탄하며 “당근을 얼마나 스팀 했느냐”고 묻자 “5분”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당근이 어찌 국수의 질감을 낼 수 있을까?
‘요리괴물’은 당이 떨어져 디저트를 만들고 싶었다며 당근을 조청에 졸여 단맛을 극대화했다. 식빵도 얇게 썰어 조청에 적시고 향긋한 만다린도 넣어 컵에 푸딩같이 담아냈다. 심사 위원들은 “어떻게 당근으로 이런 맛을 낼 수 있냐!”며 놀라워했다. 두 심사원도 당이 떨어졌다며 맛있게 먹었다. 정말 그들이 당이 떨어진 것을 눈치채고 디저트를 만들었다면 그는 요리 괴물이 아니라 요리 신이다.
둘 중 누가 최강록과 겨루어 최종전에서 우승했는지는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두겠다.
불꽃 튀기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요리사들의 노력과 열정은 시청자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자연히 요리에 임하는 그들의 태도, 말투, 행동도 드러나기 마련이다. 우리는 어느새 마음에 드는 요리사의 열성 팬이 되기도 한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인성을 요구하는 게 모순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실력에 인격까지 갖춘 사람을 바라본다는 것은 정말 기분 좋은 일이다.
시즌 1에서 ‘흑수저’ 권성준이 우승했지만, 좋은 인품을 보여준 준우승자 에드워드 리는 오히려 더 많은 사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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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애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