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새로 나온 이상한 식품 피라미드

2026-01-14 (수) 12:00:00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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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보건복지부와 농무부가 발표한 ‘2025~2030 미국인을 위한 식단지침’이 학계뿐 아니라 일반 가정에도 많은 혼란과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그동안 ‘건강의 적’으로 여겨졌던 붉은 고기를 더 많이 먹으라 하고, 버터와 소기름 등 동물성 포화지방의 섭취를 권장하며, 유제품은 저지방보다 전지유(Whole milk)가 더 좋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공개된 식품 피라미드는 기존 모델을 거꾸로 뒤집어놓은 역삼각형의 형태를 띠고 있다. 가장 중요하게 강조된 맨 위에는 스테이크와 치킨, 치즈가 올라가있고, 바로 아래 연어와 새우 등 해산물이 있으며, 가운데 중앙부분을 전지유, 요거트, 버터가 차지하고 있다. 물론 채소와 과일은 피라미드의 오른쪽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여전히 중요하게 그려져 있으나 이상한 것은 통곡물 빵과 밥이 최하단 꼬리부분에 간신히 걸쳐있는 것이다.

마치 ‘저탄고지’ 다이어트 식단처럼 보이는 이 피라미드는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의 주도하에 만들어진 것으로, 미국의 수십 년 영양정책을 완전히 뒤집어놓았다. 2005년까지 사용됐던 정삼각형 피라미드에서는 가장 넓은 맨 아랫단에 빵, 쌀, 파스타 등 곡물류가, 3단에는 채소와 과일, 2단에 육류, 생선, 유제품, 달걀, 그리고 꼭대기 가장 작은 칸에 지방과 기름이 올라있었으니 말이다.


새로운 지침에서 가장 눈에 띠는 변화는 식사의 중심을 탄수화물에서 단백질과 지방으로 이동시킨 것이다. 단백질을 매 끼니 우선 섭취하라는 권고와 함께 하루권장량을 기존의 두 배(체중 1㎏당 1.2~1.6g)로 늘렸다. 단백질원도 가금류와 생선보다 붉은 육류를 권장하고 있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미국인이 단백질이 부족하다는 근거는 없다고 말한다. 더구나 근력운동 없이 단백질 섭취만 늘리면 몸 안에서 지방으로 변하기 때문에 과체중과 심혈관 질환 위험이 높은 미국인들에게 고단백 식이는 오히려 건강에 해로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지방에 관한 급격한 태도 전환도 논란거리다. 지난 수십 년간 미국심장학회를 비롯한 전문기관들은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한 저(무)지방 유제품과 식물성 기름의 사용을 권장해왔다. 포화지방은 나쁜 LDL 콜레스테롤을 높이고 심혈관 질환 위험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케네디 장관이 느닷없이 “우리는 포화지방과의 전쟁을 끝내고 있다”면서 새 지침에서 소기름과 버터를 건강한 지방으로 공식인정하고, 올리브유와 함께 조리용 지방으로 명시한 것이다. 이에 대해 학계에서는 “과학적 근거도 없고 75년의 연구를 무시한 정책”이라는 비난과 반발이 쏟아지고 있다.

여기서 뜻밖의 스타로 떠오른 것이 소기름(beef tallow)이다. 소를 도축하고 남은 지방부분을 정제해서 만든 소기름(우지)은 돼지기름(라드)과 함께 1900년대 초반까지 미국에서 가장 흔한 조리용 기름이었다. 그러나 생산 비용이 저렴한 식물성 기름이 등장하고, 포화지방의 위험성이 알려진 1980년대부터 조리대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맥도날드, 버거킹 등 패스트푸드 체인들도 모두 1990년 이후 카놀라유, 옥수수유, 대두유 등의 식물성 기름으로 전환했다.

그렇게 부엌과 식당에서 사라진 듯했던 소기름이 7~8년 전부터 조용히 되살아나고 있다. 소기름으로 튀긴 감자나 도넛이 더 바삭하고 맛있다는 요리사들, 피부 보습제로 사용하는 뷰티 인플루언서들, 씨앗에서 짜낸 기름이 나쁘다고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 수요가 늘어난 것이다.

그러다 2024년 추수감사절에 케네디가 끓는 소기름 가마솥에서 칠면조를 꺼내며 “이게 마하(MAHA) 방식의 요리법”이라고 선언한 후, 소기름은 단숨에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2025년, 소기름 판매는 전년 대비 96% 증가했고, 홀푸즈가 선정한 2026년 최고 식품 트렌드 목록의 최상위에 올랐다.


하지만 학자들은 이런 흐름에 경고를 보내고 있다. 소기름은 자연산이니 건강하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단지 정제된 지방덩어리이고, 포화지방은 매우 위험하다”는 메시지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는 케네디 장관의 자문위원 9명 가운데 3명이 전국육우협회, 전국돼지고기위원회, 전국유제품협회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았거나 이해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일제히 보도한 주류 언론들은 새 영양지침이 과연 ‘미국을 다시 건강하게’(MAHA) 만들 수 있는 공공보건정책인지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

전국민에 영향을 미치는 식단 가이드라인은 과학적으로 충분히 검증되어야 한다. 단순 권고를 넘어 학교 급식과 군대 급식, 복지 프로그램 등 수많은 공공 식단의 기준이 되고, 연간 수억 끼의 식사가 이 기준에 따라 설계되기 때문이다.

한편 새 지침에는 긍정적인 내용도 담겼다. 초가공식품과 정제탄수화물, 설탕이 첨가된 스낵과 음료를 절제하고, 가공되지 않은 진짜 음식(Real Food)을 먹으라는 것이다,

아울러 발효식품의 중요성도 강조되었다. 장내 미생물 건강을 위해 김치, 사우어크라우트, 케피어, 미소 등을 채소·고섬유질 식품과 함께 섭취하라고 권장했다. 미국의 식단지침에 김치가 등장한 것은 처음이다.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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