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 새해, 새해가 왔다
2026-01-05 (월) 08:05:24
이홍섭 MD 감사재단 대표
“기쁜 새해 왔구나. 기쁜 새해 왔구나. 기쁜 새해 복을 많이 받아 무럭무럭 자라세!” 어릴 적에 부르던 노래다. 요즘도 새해가 되면 종종 부른다. 오래전에 은퇴했고 지금 인생 8학년이 되었음에도 계속 부르는 이유가 무엇일까? 솔직히 말해 나도 그 이유를 잘 모른다. “어릴 때 습관이 백 년 간다”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지금도 나는 그 노래를 부르며 글을 쓰고 있다.
새해! 그것이 무엇이기에 평생 동안 ‘새해의 노래’를 부르는 것일까? 어느 시인의 고백이 떠오른다. “나는 새해가 되면 새 옷을 입는다. 헌 옷을 벗어버리고 새 옷을 입는다.” 옷은 입을 때 기쁘고 벗을 때도 기쁨을 준다. 그것이 옷의 생리요 가치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새해 노래를 부르던 이유도 거기에 있겠구나 라고 생각한다.
새 옷을 입는 기쁨! 그것을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누구나 경험했고 지금도 경험하는 평범한 진리이다. 새 옷을 입으려면 헌 옷을 벗어야 한다. 그 시인의 고백처럼 헌 옷을 벗어버린다. 헌 옷을 벗어야 새 옷을 입을 수 있다. 새 옷을 입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헌 옷을 벗는 준비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나는 그 시인의 표현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루 종일 입었던 작업복을 벗어 던지고 잠옷으로 갈아입고 잠드는 우리의 모습을 생각해 보라. 옷을 입고 벗는 동작은 연례 행사가 아니라 매일매일의 일상입이다. 잠옷 입고 깊이 잠들면 아침 해가 방긋이 웃으며 잠을 깨운다. 벌써 아침이야? 그래 Good morning이다 인사하며 새 아침을 맞는 것이다. 매일 맞이하는 Good morning! 그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다. 그것이 모이고 쌓여서 기쁜 새해가 지어지는 것이다.
세계 2차 대전은 20세기 최대의 악몽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터널을 가는 것 같았다”라고 역사가들은 말한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에도 해가 다시 떠오를 수 있을까?” 하는 비관론이 세계에 확산되고 있었다. 그때 혜성처럼 나타난 사람이 바로 처칠 영국 수상이었다. 그는 세계 2차 대전을 예언했고 그것을 승리로 이끈 세계적인 명지도자였다. 그런데 아침 국무회의 시간에 종종 지각을 했다. 그래서 국무회의 시간에 항의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어떻게 의장님이 늘 회의에 늦게 참석하십니까?”라는 강력한 항의였다. 그때 처칠 수상은 그 유명한 대답을 했다. “누구나 나처럼 절세의 미녀와 살아본 사람은 그런 불평을 못할 겁니다.” 장래는 갑자기 웃음바다가 되어버렸다. 웃을 이야기가 아니다. 감동을 주는 이야기다. 그 후 국무회의는 계속 늦게 시작했다.
불평 없이, 항의 없이… 나는 그것을 Good night(옷 벗는 기쁨)이 만들어낸 사건으로 본다. Good night, Good morning은 기쁜 새해를 낳고 키우는 길이요 방법이라고 본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창세기 1장). 성경이 말하는 진리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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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섭 MD 감사재단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