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금요단상] 비자 발급

2025-12-26 (금) 12:00:00 전병두 서북미수필가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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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국 입국 및 체류 비자 발급이 예전에 비해서 쉽지 않다는 말을 듣는다. 미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 가운데 합법적인 서류를 갖추지 못한 이들에게는 하루하루가 살얼음 위를 걷는 것 같은 날을 보낸다는 말도 들린다. 실제로 이민세관단속국(ICE)이 미국의 주요 도시에서 단속하는 장면을 볼 때마다 마음이 움츠러들곤 한다.

서울에서 음악을 전공한 한 젊은이가 우리 마을에 왔다. 독실한 신앙을 가진 그는 전공을 살려서 미국에서 예술의 꿈을 펼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체류 비자를 얻는 일이 문제다. 그는 이 마을에서 교민들과 호흡을 함께하며 정착 교민을 도와오던 교포 교회를 찾았다. 규모가 별로 크지 않은 교회이지만 성가대가 조직되어 있었다. 예배나 특별 행사 때 성가대의 역할은 중요했다. 이 청년은 자신의 전공을 살려서 꿈을 펼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 사정을 알게 된 한국 교회는 그를 성가대 지휘자로 맞아들일 수 있는 길을 함께 모색하기로 했다. 이 일이 성사된다면 교포 교회는 물론이고 이 지역 주민들에게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변호사를 선임한후 서류 준비를 서둘렀다. 교회에서 신청할 수 있는 대표적인 비자는 종교활동 비자(R-1)이다. 이 비자는 주로 목회자나 종교 교육자들에게 발급되는 비자이다. 이 비자를 발급받으면 30개월 간 사역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추가로 30개월 연장도 가능하고 영주권까지 신청할 수 있는 특혜가 주어진다.


문제는 교회의 규모가 크지 못한 것이다. 그것이 걸림이 될까 염려되었다. 그러나 교회는 정직하게 서류를 준비했다. 희망적인 사항은 교회에서 꾸준히 실행해 왔던 음악 활동이었다. 이 교회는 지난 27년 동안 한국 전쟁 참전 용사와 전쟁고아 입양 가족 초청 연례 음악회를 개최해 왔다. 작은 도시의 교회로서는 드문 행사였고 지역 사회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었다. 매년 행사 때마다 참전 용사분들의 숫자는 줄어들었지만 비워지는 자리를 그 유족분들이 채워 주었다. 이 지역의 시장님, 의회 의원님들도 참석하여 행사를 축하해 주곤 했었다.

이민국에 제출하는 서류 가운데 교회 활동을 소개하는 난이 있었다. 이 행사에 관하여 설명하고 사진까지 곁들여 행사의 의미를 부각시켰다. 이 행사의 지속을 위해서는 훌륭한 음악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서류를 제출하고 마음을 졸이면서 결과를 기다렸다. 2주간 정도 지났을 때 변호사를 통하여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성가대 지휘자의 체류 비자가 허락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변호사는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결정되었다고도 했다. 우리는 환호하였다. 마치 꿈꾸는 것 같았다. 문턱이 높아만 보이던 체류 비자가 이렇게 빠르게 결정된 일은 그동안 지역사회를 위한 교회의 봉사활동이 큰 감명을 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우리의 작은 봉사활동이 이 큰 기쁨으로 찾아 올 줄은 몰랐다. 27년 간 수고의 열매가 향기롭게 다가왔다.

<전병두 서북미수필가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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