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온라인쇼핑과 반품, 그리고 그 이후

2025-12-24 (수) 12:00:00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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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 다음날, 블랙 프라이데이에 실로 오랜만에 아울렛 쇼핑에 나섰다. 아울렛은 한물 간지가 오래 된지라, 요새 누가 그런 데서 쇼핑하랴 싶어 재미삼아 떠났는데 이게 웬일, 딴에는 일찍 간다고 아침 9시에 도착했는데도 프리웨이 출구에서부터 차가 밀렸다. 결국 주차장에는 진입도 못한 채 인근 주택가에 차를 세우고 거의 1마일을 걸어갔다.

매장들은 당연히 혼잡했고, 어딜 가나 사람 물결이 넘실댔다. 아직도 아날로그 쇼핑이 살아있는 현장, 양손에 쇼핑백을 들고 부지런히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놀라움과 함께 일종의 안도감을 선사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오프라인의 건재함을 보는 것은 살짝 감동이었다.

여느 가정처럼 우리 집도 거의 모든 상품구매를 온라인으로 해결해온 지가 오래됐다. 싸고, 편리하고, 빠르기 때문에 이를 멈추기란 쉽지 않다. 수많은 상품을 한눈에 비교할 수 있고, 주문과 동시에 하루도 안 돼 배송되니 어느 영화제목처럼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아마존에 대한 여러 비난과 과도한 포장이 만들어내는 환경오염 때문에 마음이 편치는 않지만, 당분간 이를 대체할 수단은 찾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 쇼핑이 빠른 시간에 자리 잡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반품의 용이함’ 때문이다. 스크린 이미지만 보고 샀다가 실물과 달라서 낭패가 되더라도 다시 리턴하면 되니 말이다. 리턴 레이블까지 동봉하는 친절한 업체들도 많은데다, 우체국까지 갈 필요 없이 가까운 UPS 스토어에 드롭만 하면 되니 온라인구매를 망설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소매업계와 UPS의 공동조사에 따르면, 2025년 팔린 전체 상품 중 15.8%가 반품될 예정이다. 그러나 전자상거래에서 구매한 의류는 이보다 훨씬 많은 25%가 반품된다. 옷과 신발의 경우, 아무래도 직접 입어보고 신어보면 사이즈와 피팅 문제가 나오기 때문이다.

이렇게 반품한 상품들은 어떻게 될까? 사람들은 아마 업체에서 상태를 검사하고 재분류하여 다시 매장에 내놓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고가의 상품이나 디자이너 브랜드는 당연히 그렇게 한다. 하지만 쉽고 사고 쉽게 소비되는 저가의 ‘패스트’ 상품들은 이야기가 다르다.

최근 뉴욕타임스의 상품리뷰 사이트 와이어커터(wirecutter)는 반품됐거나 팔리지 않은 재고품들이 벌크로 거래되는 2차시장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미 전국에는 이런 도매 팔레트 센터가 곳곳에 있는데, 창고들마다 상품으로 가득 찬 수천개의 팔레트들이 수백 미터에 걸쳐 끝없이 늘어서있고 누구나 원하면 구입할 수 있다고 한다.

와이어커터 팀은 이중 6피트높이의 450파운드짜리 팔레트를 700달러(운송비까지 약 2,000달러)에 구매했다. 그리고 4명이 꼬박 이틀 동안 박스를 해체하여 430개의 패키지를 뜯고 582개의 물건을 꺼냈다. 대부분 바느질이나 옷감이 형편없는 싸구려 의류들- 바지, 드레스, 셔츠, 수영복, 모자와 신발들이었다. 상품들의 가격을 합산하니 약 8,000달러어치였지만, 중고시장에서는 개당 1~2달러도 못 받을 것이었다.

포장 속에 들어있는 영수증들은 대부분 아마존 상품들이었다. 전국각지의 고객들이 반품한 상품들이 아마존으로 가지 않고 바로 이런 곳으로 보내진 것이다. 반품 처리에 관해 묻자 아마존 대변인은 “리턴 상품은 잘 검사하여 재판매 가능여부를 판단한다.”고 했지만, 와이어커터 팀이 오픈한 팔레트 속의 내용물은 모두 밀봉된 상태였다. 개봉조차 하지 않고 그대로 재고정리업체로 넘긴 것이다.

소매업체의 입장에서 모든 반품 상품을 일일이 확인하는 것은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고, 재고가 오래 남아있을수록 비용이 발생하게 된다. 또 상품을 폐기하려면 폐기비용까지 지불해야하니, 아예 제3의 업체에 넘겨버리는 것이 손쉽고 간편한 해결책이 되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 이후의 일은 누구 책임일까?


기업들은 끊임없이 상품을 만들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물건을 사들이며, 넘쳐나는 물건은 끊임없이 쓰레기를 만든다. 과잉생산과 과잉소비는 쓰레기의 폭증을 부르고 환경오염을 초래한다. 맥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에서 매년 1,000억 벌 이상의 옷이 만들어지는데 이중 30%가 한 번도 입지 않은 채 버려져 매립장으로 직행한다. 온라인 구매가 간편해진 만큼 버리는 속도도 빨라져서 구세군이나 굿윌 같은 곳에 기부조차 하지 않고 그냥 버려지고 있다.

칠레 북부의 아타카마 사막은 수마일에 걸쳐 알록달록한 옷들의 언덕으로 뒤덮여있다. 세계 각국에서 버려진 옷 폐기물이 이룬 거대한 쓰레기산이다. 가나,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등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도 이런 쓰레기산들이 있다. 선진국으로부터 수입한 의류폐기물을 재활용하고 남은 옷들이다. 쓰레기산은 악취와 함께 독성이 강해 수질과 생태계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다.

내일모레, 애프터 크리스마스 날에도 쇼핑하는 사람들이 넘쳐날 것이다. 수많은 반품이 발생하고 쓰레기도 쌓일 것이다. 우리의 무책임한 쇼핑 때문에 또 얼마나 많은 쓰레기산이 만들어질까?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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