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도 저물어가는 어느덧 세모(歲暮)의 밑이다.
엊그제가 1월이었는데 세월은 유유히 말없이 흐르는 가운데 많은 일들이 2025년에 일어났다. 곳곳에서는 아까운 생명이 목숨을 잃었고, 타인에 의해서 제 명이 다한 것도 아니건만,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다.
남을 해치는 행위도 과도한 욕심에서 비롯된다.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다"
욕심은 채워도 한이 없다는 표현이다. 욕심은 마음의 ‘어둠'을 키우고, 그 어둠이 폭력으로 번져간다.
옛날 제(齊)나라에 시집 가야 할 나이의 한 예쁜 처녀가 있었다. 어느 날 청혼이 두 곳에서 들어왔다.
동쪽 집의 신랑감은 인물은 별로였으나 대단한 부자였고, 서쪽 집은 매우 가난했지만 보기 드문 미남이었다. 난처하게 된 부모는 당사자의 마음이 중요하다며 딸한테 물었다.
“만일 동쪽 집의 총각에게 시집가고 싶으면 왼쪽 소매를 걷고, 서쪽 집 총각에게 가고 싶으면 오른쪽 소매를 걷어라." 한참을 망설이던 처녀는 양쪽 소매를 다 걷어 올렸다. 부모가 까닭을 묻자 딸은 “낮에는 동쪽 집에 가서 좋은 음식을 먹고 싶고, 밤에는 서쪽 집에서 자고 싶어요" 라고 말했다.
자기의 잇속을 차리기 위해 절개 없이 이리저리 빌붙음을 가리키는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을 의미한다. 일정한 거처 없이 떠돌아 다님을 일컫는 말로도 쓰인다고 한다. 이 처녀는 양손에 떡을 쥐겠다는 말이다. 한 번에 모든 것을 가지려는 것은 비현실적인 욕심인 것이다.
이곳 워싱턴에는 글 쓰는 모임이 꽤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군데만 다닌다.
어떤 사람들은 이리저리 사방군데 다 나가고 또한 다른 00에 잘 다니고 있는 사람을 ‘벌집 건드리듯 자꾸 찌른다,' 한 곳에 소속이 되어 있으면 ‘소속감'을 가지고 활동을 해야 하지 않을까?
겉에서 보여지는 인원을 늘리기 위해 잘 다니고 있는 사람들한테 그렇게 하는 것이다.
잘 모르는 사람은 그렇게 해도 된다고 믿게(?) 될 것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 것이다." 위에서 흙탕물을 흘려보내면 아랫물도 당연히 흙탕물로 바뀔 수 밖에 없다. 하물며 장사를 하는데도 상도덕이 있다. 누구 가게가 잘 된다 하면 같은 업종을 그 옆에다 차리며 손님을 앗아가는 행위는 상도덕을 어긴 것이다. 비양심적이다. 윤리(倫理)는 인간관계의 올바른 원리이다. 지켜야 할 올바른 행동 규범이기도 하다.
어느 지역의 식당에서 주인이 하소연을 한다. 주방 일을 잘 보던 직원을 다른 데서 꼬드겨서 데려간다 한다. 같은 한인들끼리 서로 자기 잇속을 위해서 행해지는 불미스런 일이다.
구세군 종소리와 함께 세밑 자선냄비를 채워가는 따뜻한 손길에서 한 해가 저물어감을 느낄 수 있다. 물질의 나눔뿐만 아니라 마음의 나눔도 따뜻하게 하는 능력이 있다.
유한한 삶 속에서 정직하게 피어나는 순간들은 진정한 보석처럼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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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포토맥 문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