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셀린 송 영화 ‘머티리얼리스트’ HBO 맥스
▶ 섬세하고 지적인 가슴 아픈 현대판 로맨스
![[주말 뭐 볼까 OTT] ‘진정한 사랑은 자본주의가 빼앗을 수 없다’… 사랑의 진짜 가치는? [주말 뭐 볼까 OTT] ‘진정한 사랑은 자본주의가 빼앗을 수 없다’… 사랑의 진짜 가치는?](http://image.koreatimes.com/article/2025/11/27/20251127194422691.jpg)
루시(다코타 존슨)는 고객의 결혼식에서 뉴욕 최고의 싱글남 해리(페드로 파스칼)에게 대시를 받는다. [A24 제공]
‘패스트 라이브스’로 전 세계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셀린 송 감독이 신작 ‘머티리얼리스트’(Materialist)로 돌아왔다. 이번에도 특유의 섬세함과 지성을 바탕으로 현대인의 사랑을 정밀하게 해부하며 가슴 아픈 현대판 로맨스를 완성한다. 영화는 뉴욕 맨해튼의 중매(매칭 서비스) 세계를 무대로, 다코타 존슨이 연기한 커플 매니저 루시의 여정을 따라간다. 어느 날, 고객의 결혼식에서 루시는 뉴욕 최고의 싱글남 해리(페드로 파스칼)의 구애를 받는다. 그러나 사랑 앞에는 늘 변수와 선택이 있다.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던 전 남자친구 존(크리스 에반스)과 뜻밖의 재회를 하게 된 것. 루시는 두 사람 사이에서 흔들리며 자신의 마음을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영화의 출발점은 셀린 송 감독 자신의 경험이다. 극작가 시절 생계를 위해 6개월간 매치메이커로 일했던 경험을 10년 넘게 숙성시켜 스크린 위에 끌어올렸다. 그는 구상 과정에서 제인 오스틴에게서 큰 영감을 받았다고 밝힌다. 셀린 송 감독은 “‘오만과 편견’의 환상은 사랑하는 사람이 동시에 모든 재정적 문제의 해결책이 된다는 데 있다”고 말하며 오늘날 한 사람에게서 사랑과 안정 두 가지를 모두 기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워졌는지 날카롭게 보여준다.
루시는 고객들에게 키·수입·외모처럼 수치화된 기준으로 완벽한 짝을 찾아주지만 정작 자신의 사랑 앞에서는 미로에 빠진 듯 혼란스러워진다. 부유한 해리와 가난한 존 사이에서 갈등하는 루시의 모습은 현대인의 내면을 은유적으로 비춘다. 다코타 존슨은 루시라는 복잡한 캐릭터를 놀라울 만큼 섬세하게 구현한다. 사람들 앞에서는 강인하고 능숙한 전문가이지만, 혼자가 되는 순간 균열이 드러나는 인물. 셀린 송 감독이 그를 캐스팅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완전히 통제되는 모습과 완전히 무너지는 모습을 동시에 품을 수 있는 배우. 다코타는 “소셜 미디어는 거짓된 외양을 정체성의 전면으로 끌어올렸다. 이제 우리는 키나 수입, 입술 크기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한다. 하지만 인간이 가진 가장 큰 가치는 영혼과 마음”이라고 말한다.
멕시코 두랑고에서 촬영한 오프닝과 클로징 시퀀스는 특히 인상적이다. 원시 동굴의 석기와 루시의 꽃반지를 병치하며, 물질적 역사와 영적 가치의 대비를 서정적으로 시각화한다. 영화는 해리의 펜트하우스만큼이나 존의 작은 아파트에도 공을 들인다. 감독은 실제 삶의 다양한 계층과 공간이야말로 우리의 사랑이 머무는 진짜 장소라고 강조한다. 2달러짜리 술을 파는 바와 룸메이트와 함께 사는 초라한 공간들?그 안에서 감정은 오히려 더 진해진다.
‘머티리얼리스트’는 로맨틱 코미디의 외피를 입고, 우리 시대의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SNS와 자본이 규정한 ‘가치’의 기준 속에서, 진짜 나를 바라보는 사람을 선택하는 용기는 무엇인가. 셀린 송 감독은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삶 속에서 발휘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한 형태의 용기라고 말한다.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 아니어도, 누군가를 있는 힘껏 사랑하는 것만으로 작은 기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루시가 마지막에 “딜(deal)”이라고 대답하는 순간, 관객은 그녀가 비로소 성숙한 어른이 되어가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것은 사랑을 선택하는 용기일 뿐 아니라, 자신을 상품이 아닌 ‘사람’으로 대우받을 권리를 선언하는 행위다. 존이 건네는 마지막 약속?“오늘도 사랑하고, 영원히 사랑할 것”?은 어떤 물질적 선물보다 귀하다. 결국 사랑은 자본주의가 완전히 빼앗을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셀린 송의 영화가 관객과 깊이 공명하는 이유는, 그들을 무엇보다 ‘똑똑한 존재’로 대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관객들은 화려한 판타지보다 정직한 감정, 진부할지라도 현실의 복잡함을 품은 로맨스를 찾는다. ‘머티리얼리스트’는 쉬운 해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스크린 너머로 질문을 건넨다. 당신의 사랑은, 당신의 선택은 무엇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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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