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간의 경쟁자 될까, 든든한 동료 될까… ‘휴머노이드의 진화’

2025-11-28 (금) 12:00:00 양홍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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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다리로 우뚝 선 휴머노이드가 던지는 질문
▶ AI와 결합한 휴머노이드 급성장
▶ 중국·미국 앞서고 한국도 맹추격
▶ 2050년 무려 10억대 생산 전망

▶ 공장 생산라인·물류 등 투입 시작
▶ 로봇 1대당 인력 10명 역할 수행
▶ 가사·돌봄 등 일상 속도 파고들어

인간의 경쟁자 될까, 든든한 동료 될까… ‘휴머노이드의 진화’

드라마 ‘머더봇 다이어리’는 휴머노이드가 인간과 함께 사회를 구성하는 일원이 될지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애플TV플러스 제공]

아마존 감원 등 일자리 위협 불구
가장 힘들고 위험한 노동에 활용
사람만이 가능한 일에 집중 ‘윈윈’


애플TV가 5월부터 방영한 SF드라마 ‘머더봇 다이어리’에는 로봇(휴머노이드형)이 불러올 끔찍한 디스토피아가 그려진다. 우리가 떠올리는 보편적 미래 로봇은 힘든 노동을 감당하고 인간을 감정적으로 돕는 존재다. 하지만 로봇이 이 경계를 벗어나 인간처럼 자율성을 발휘하는 등 너무나 ‘인간화’된다면 어떨까. 인간이 로봇을 컨트롤하는 일명 ‘지배모듈’이라는 것이 사라져 로봇 스스로 판단하고 인간 무리에 스며든다면 이는 지옥에 가깝지 않을까.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보안(Security) 로봇’은 합성 안드로이드로 지배모듈을 자체 해킹해 신체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인간화’한 모습을 보여준다. 수동적이고 복종하며 묵묵히 일하는 로봇과는 동떨어져 있다. 이는 얼토당토않는 상상일까.

인간과 닮아 ‘휴머노이드(Humanoid)’로 불리는 이족(二足)로봇 기술력이 급성장 중이다. 아기처럼 아장아장 걸으며 ‘관상용’ 정도에 머물던 것(2000년대 초)이 어느새 사람처럼 관절을 꺾고, 뒤로 미끄러지듯 걸으며, 촉각으로 물체를 감지하기에 이른다. 최근 선보인 중국산 휴머노이드(아이언 2세대)는 외관과 걷는 모습이 너무 인간 같아 외피를 사람들 앞에서 벗겨 보이기까지 할 정도였다. 인공지능이 ‘초인간’ 지능보다 보편적 인간지능(AGI) 도달을 지향하듯, 로봇도 슈퍼파워보다는 평범한 사람처럼 행동하는 쪽으로 진화한다. 다시 말해 진화할수록 이들 로봇은 ‘인간화’에 다가서고 있다. 휴머노이드는 끝내 무엇에 더 가까워질까. 동료일까 아니면 경쟁자일까. 휴머노이드 성장세 뉴스들이 품고 있는 다양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본다.


① 중국의 약진- 보스턴다이내믹스 회장도 탐내는 공급망

골드만삭스가 지난해 말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은 2035년 378억 달러 규모까지 성장한다. 이는 불과 1년 전 전망치(60억 달러)보다 6배 이상 확장된 수치다. 출하 예상치도 140만 대에 이른다. 이렇게 추정치가 확대된 건 그새 천문학적으로 발전한 거대언어모델(LLM) 덕분이라고 한다. 이보다 좀 더 지나 제시된 모건스탠리 전망치(2025년 5월)는 더욱 놀랍다. 2050년엔 무려 10억 대 이상 휴머노이드가 생산될 거라 봤다. 그런데 이 리포트엔 흥미로운 ‘단서’가 하나 붙었다. 다름 아닌 ‘중국이 성장을 주도한다’이다.

2000년대 초반 카이스트와 한국과학기술원(KIST)이 각각 ‘휴보’와 ‘마루’를 개발해 세계 일류 로봇 기술력을 드러낸 우리는 그러나 2025년 현재 휴머노이드 분야에선 중국에 한참 뒤떨어져 있다. 테슬라와 메타 등이 AI기술과 소프트웨어 역량으로 2만 달러 이하 상용 휴머노이드를 생산하기에 이른 미국은 물론, 로봇 개발 초창기 크게 앞섰던 중국에도 우위를 내준 건 안타깝다.

지난달 2일 서울시 코엑스에서 진행된 ‘서울 AI로봇쇼’에서 만난 중국 로봇기업 유니트리 파트너사 영인모빌리티 권용식 대표는 복싱하는 휴머노이드 로봇 시연에 한창이었다. “지금 한국에서 특히 휴머노이드 관심도가 커지고 있어요. 그동안 오락·교육 연구용에 제한됐던 휴머노이드 시장이 제조업 분야로 확산되면서죠.” 이 말을 풀어보자면, 이제 휴머노이드가 실질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존재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일하는 로봇이 성과를 내려면 향상된 성능이 중요하지만, 대량생산 시스템과 이를 통한 비용절감이 따라야 한다. 권 대표는 이런 면에서 중국은 압도적이라고 단언했다. “미국 다음으로 AI 관련 논문과 특허가 많은 나라가 중국이고, AI는 물론 로봇에 있어서도 중국과 미국 격차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어요. 중국이 지닌 최대 장점은 로봇 제조를 위한 단단한 생태계가 이미 구축돼 있다는 거죠.”

중국은 2015년 로봇 특허 출원 개수로 세계 1위에 올랐고, 현재 상위 100개 특허 보유 기관 대다수가 중국 소속이다. 월드 로보틱스(World Robotics 2025)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 세계 산업 현장에 배치된 로봇 중 54%가 중국 기업에서 ‘일’을 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제14차 5개년 로봇산업 발전계획’, ‘중국제조 2025’와 같은 국가 전략을 동원해 집중 지원하면서 로봇 핵심 부품 자급률이 크게 향상됐다.

산업용 로봇 현지화율은 2023년 47%를 넘어섰고 특히 구동부품 자급률은 70% 이상이다. 중국이 휴머노이드 등 로봇 시장을 선도할 수 있게 된 건 공급망이 굳건해지면서 단가 경쟁에서 앞섰기 때문이기도 하다.


② 한국의 도약-1초 3.2m 걷는 휴머노이드, 우사인 볼트 따라잡는 사족로봇

최근 카이스트 휴보랩(인간형 로봇 연구소)이 개발한 로봇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2004년 국내 최초 휴머노이드 ‘휴보’를 탄생시키고 2015년 세계 재난대응 로봇대회(DARPA)에서 우승하며 우리 기술의 글로벌 우위를 입증했던 휴보랩. 우리나라 로봇 개발 산실인 이곳 출신 연구진이 사족과 이족로봇 분야에서 획기적인 기술 진보를 이뤄내고 있다는 뉴스들이다.

명현 카이스트 교수 연구팀이 창업한 유로보틱스는 스스로 지형을 감지해 보행하는 시스템을 적용한 휴머노이드를 강남 거리에서 시연했다. 2019년 사족로봇 ‘하운드’로 100m달리기 기네스 기록(19.87초)을 세웠던 박해원 교수의 디든로보틱스는 최근 철제 벽면과 천장을 자유롭게 오가며 작업할 ‘승월(昇越)로봇’ 기술 상용화에 성공했다. 박 교수팀은 이 밖에 초속 3.2m로 보행이 가능한 휴머노이드 하체 플랫폼을 독자 개발했다. 감속기, 모터 등 주요 부품 모두 자체 개발로 제작된 이 플랫폼은 문워크(뒷걸음)와 같이 인체만 가능한 고난도 동작을 구현했다.

지난달 27일 대전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휴보랩에서 만난 박 교수는 약 10년 새 급격히 진보한 로봇 기술 요체를 ‘강화학습’과 ‘모터 구동기 기술혁신’으로 설명했다. 휴머노이드가 물리적으로 인간보다 월등한 힘을 발휘할 경우는 의외로 제한적이다. 흔히 영화나 애니메이션으로 봐왔던 ‘슈퍼파워 로봇’은 인간과 공간을 공유한다는 게 아예 불가능해서다. 인간 노동력을 대신하고, 가사업무를 보조하는 휴머노이드가 ‘뻑뻑한 관절’이 아닌 ‘부드러운 구동’을 더 필요로 하는 건 당연하다. 또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후에야 로봇은 사람처럼 관절을 움직여 자연스럽게 걸을 수 있게 된다.

“휴머노이드가 안 넘어지고 잘 걸어 다니면 점수를 높게 부여하는 함수를 설계해 로봇 스스로 능력치를 올리도록 하는 걸 강화학습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실제 환경에서 이를 반복하면 수없이 넘어지고 부딪쳐야 해 로봇이 남아나지 않을 거죠. 그래서 이 과정을 가상현실 환경에서 진행합니다.” 로봇은 AI와 달리 행동을 하기에 학습 데이터를 주입하는 식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현실에서 마냥 강화학습만 시킨다 해도 여기에 투입되는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아 비효율적이라는 게 박 교수 설명이다.

우리가 중국 기술력을 얕잡아 볼 수 없지만, 그렇다고 추월이 불가능하다며 기운 빠질 일도 아니다. “10여 년 전 MIT에서 공개된 보행 로봇 구동기 기술이 지금 중국 로봇들에 들어가 있다고 보면 돼요. 로봇은 열심히 잘 조립해 조합하면 되는 게 전부인데, 이런 걸 중국이 제일 잘합니다.” 이날 휴보랩에서 마주한 박 교수팀의 휴머노이드 하체 플랫폼은 김상배 MIT교수팀이 제작 중인 손, 명 교수팀이 연구 중인 내비게이션 알고리즘, 카이스트 황보재민 교수팀이 완성하는 상체와 결합만을 기다리고 있다. “시속 14㎞ 정도로 보행한다고 보면 됩니다. 저기 있는 사족로봇, 아마 세계에서 가장 빨리 달리는 로봇일 거예요. 순간 시속 41.4㎞를 찍었으니 우사인 볼트 기록도 깼 죠. 네, 인간이 만든 다리 달린 시스템 중 제일 빠릅니다.”

③ 일자리 빼앗기-현장으로 나선 그들, 우리와 파이를 나눠 먹을 것인가

중국산 휴머노이드가 모델워킹을 선보이는가 하면 테슬라와 메타 등 빅테크가 생산한 미국 로봇은 바텐더로 손님을 맞는다. 지난 춘절 중국 시청자들은 휴머노이드들이 붉은 수건을 흔들며 인간 무용수와 군무하는 모습에 넋을 잃었다. 이렇게 화려한 첨단 휴머노이드라도 아직 대부분 디지털 방식으로 원격 조정해야 움직이는 수준이고, 배터리가 금세 닳아 균형을 잃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이 인간 자리를 위협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최근 미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중국 로봇기업 유비테크는 지리(Geely) 등 완성차 업체와 협력 관계를 맺어 휴머노이드들이 전기차생산 라인에 들어가는 예비 작업에 착수했다. 지난달 전체 직원 10% 수준인 3만 명을 감원하기로 해 충격을 준 아마존 물류창고에는 2년 전부터 해고 폭풍을 예고하듯 소포를 분류하는 스타트업 어질리티 로보틱스 휴머노이드가 자리를 잡았다.

로봇이 산업현장에서 일자리를 차지하고 우리와 ‘파이’를 나눠 먹는 미래는 빠르게 도래했다. 앞서 소개한 카이스트 ‘승월로봇’처럼 사람이나 로봇팔이 닿을 수 없는 극한 공간에서 작업할 수준으로 기술력이 성장한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기업들이 임금보다 저렴하게 이들 로봇을 구입해 쓸 수 있게 되어서다. 보스턴다이내믹스 파트너사 클로봇 측에 따르면 현대기아차 현장에 투입된 사족로봇은 주로 안전관리와 순찰 업무를 대신한다. 휴무가 필요 없는 이 로봇은 대당 인력 10명 역할을 한다고 한다.

본체가 1억8,000만 원이고 관제 시스템과 서버까지 포함하면 약 4억 원 중반대면 이 로봇 운영이 가능하다. 점차 인체와 닮아가는 휴머노이드들은 중공업 현장을 벗어나 인간만이 가능했던 미세한 공정도 도맡을 날이 머지않다. 권 대표는 “미세한 손놀림이 필요한 휴대폰 제조 공장에서 휴머노이드의 작은 손이 위력을 발휘할 날도 머지않았다”고 말했다.

<양홍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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