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트럼프 남아공 G20 보이콧 후폭풍…다자주의 불확실성 예고

2025-11-23 (일) 10: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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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평등·부채·기후변화 부각은 성과…정상 포럼 기능도 확인

트럼프 남아공 G20 보이콧 후폭풍…다자주의 불확실성 예고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에게 ‘백인 학살 의혹’ 추궁하는 트럼프 대통령 [로이터]

남아프리카공화국은 22∼23일(현지시간) 요하네스버그에서 개최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아프리카 첫 의장국으로서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차기 의장국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행사를 보이콧하기는 했지만, 회의 첫날 정상선언이 전격 채택되면서 불평등과 부채, 기후변화 등의 이슈와 함께 다자주의의 가치가 부각됐다.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85%와 무역의 75%,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19개국과 유럽연합(EU), 아프리카연합(AU) 등 전 세계 주요 지도자들의 포럼으로서 기능도 재확인했다.


그러나 미국의 불참은 이른바 '트로이카'(G20 작년·올해·내년 의장국)의 일원으로선 1999년 창설 이래 처음으로, G20으로 대표되는 다자주의의 미래에 불확실성을 드리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 글로벌사우스 의장국 주기 마무리…불평등·부채·기후변화 부각

올해 정상회의는 2022년 인도네시아, 2023년 인도, 2024년 브라질에 이어 글로벌사우스(Global South·주로 남반구에 위치한 신흥국과 개도국을 통칭)의 G20 의장국 순환 주기를 마무리하는 의미도 지닌다.

특히 남아공은 아프리카 첫 의장국으로서 글로벌사우스는 물론 아프리카 국가들이 직면한 글로벌 불평등 해소와 저소득국 부채 경감, 기후변화 대응 강화 등을 올해 정상회의의 목표로 삼았다. '연대·평등·지속가능성'을 주제로 정한 배경이다.

이를 위해 남아공은 기후변화 재난 복원력과 대응 강화, 저소득국의 지속 가능한 부채 관리, 공정한 에너지 전환을 위한 자금 조달, 포용적 성장과 지속가능한발전을 위한 핵심 광물 활용 등을 우선 과제로 제시하고 정상들의 합의를 끌어냈다.

남아공이 아프리카너스 백인을 박해한다고 주장하며 G20 의제 등을 두고 갈등을 빚은 끝에 이번 회의에 불참한 미국은 현지 대사관을 통해 미국의 동의 없는 정상회의 결과 문서 채택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합의 부재를 반영한 의장성명만 수용할 수 있다고 압박했다.

그러나 남아공은 굴하지 않고 강하게 밀어붙여 첫날 회의 시작과 함께 'G20 남아공 정상선언''(G20 South Africa Summit: Leaders' Declaration)을 채택했다.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은 23일 폐회사에서 "이번 의장국 임기를 통해 아프리카와 글로벌사우스 국가들의 우선순위를 G20 의제의 핵심에 확고히 자리매김했다"며 "인도네시아, 인도, 브라질 등 이전 의장국들의 개발 의제를 바탕으로 우리는 개발도상국 경제에 가장 중요한 문제들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고 말했다.

◇ 세계 주요 지도자 한자리에…포럼 역할 '톡톡'

이번 정상회의에는 42개국 정부 수반과 고위 외교관, 유엔·세계은행(WB)·국제통화기금(IMF)·세계무역기구(WTO) 등 국제기구 대표가 참석했다.

이를 계기로 회의 전후로 회의장인 요하네스버그 나스렉 엑스포센터, 주요 정상들의 숙소가 있는 샌튼 등지에서는 다양한 고위급 부대행사와 양자회담이 열렸다.

남아공·EU 특별정상회의(20일), 국제 민관협력체인 글로벌펀드(The Global Fund)의 제8차 재정공약 정상회의, 아프리카 국가원수 회의(이상 21일), 인도·브라질·남아공 3개국의 입사(IBSA) 정상회의(23일) 등이 그 예다.

이재명 대통령도 G20 정상회의 일정 외에도 한국이 주도하는 중견 5개국(한국·멕시코·인도네시아·튀르키예·호주) 협의체인 '믹타'(MIKTA) 정상·대표들과 회동, 프랑스·독일 정상과 양자회담 등의 일정을 소화했다.

정상회의 기간 회의장 주변에서도 주요 정상들의 다양한 회동이 이뤄졌다.

특히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22일 회의장 한편에서 따로 만나 미국의 우크라이나 평화구상안에 대한 대응을 논의했다.

이들은 같은 날 오후 일본, 캐나다,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 노르웨이, 아일랜드, 핀란드, EU와 함께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국경이 무력으로 변경돼서는 안 된다"며 "미국의 계획은 추가 작업이 필요한 기초"라고 밝혔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의 평화구상안이 최종안은 아니라면서 조정 가능성을 시사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제안한 28개 항목의 평화구상안에는 우크라이나가 동부 돈바스(도네츠크 및 루한스크) 지역 전체를 러시아에 양보하고, 우크라이나군을 60만명 규모로 축소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 유례없는 차기 의장국 美 불참…다자주의 불확실성

올해 들어 남아공과 G20 내년 의장국인 미국의 관계는 악화 일로를 걸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 초부터 남아공이 역사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도입한 '토지수용법'을 백인 차별이라고 비판했고, 백인 농부가 박해·살해당하고 있다는 주장을 거듭했다. 지난 5월에는 백악관을 방문한 라마포사 대통령의 면전에서 남아공의 백인 농부 집단 살해 의혹을 주장하며 면박을 주기도 했다.

급기야 지난 5일 한 연설에서 "남아공은 더 이상 G그룹에 속해선 안 된다"며 G20 퇴출을 시사했고, 지난 7일에는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서 "남아공에서 G20 회의가 열리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며 올해 G20 회의 보이콧 방침을 공표했다.

회의를 이틀 앞둔 지난 20일에는 라마포사 대통령이 EU 지도부와 연 공동기자회견에서 미국이 G20 불참 방침을 번복했다고 주장했다가 해프닝으로 끝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 백악관은 라마포사 대통령의 주장을 허위라고 일축하고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다소 입을 함부로 놀리고 있다(running his mouth)"며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이를 두고 현재와 차기 의장국이 날카로운 공방으로 깊은 분열을 드러내며 G20으로 대표되는 다자주의가 시험대에 오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차기 의장인 트럼프 대통령은 2026년 G20 정상회의를 자신이 소유한 마이애미의 도랄 골프 리조트(Trump National Doral Miami)에서 개최한다고 발표하며 논의의 초점을 경제 협력 문제로 좁히겠다고 시사한 바 있다.

다른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G20 보이콧을 다자주의를 향한 미국의 지속적 이탈 흐름에서 봐야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정부는 과거 파리기후협정, 세계보건기구(WHO) 탈퇴에 이어 최근 제30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30)에도 처음으로 연방정부 차원의 대표단을 파견하지 않았다.

백악관은 '남아공 G20 정상선언' 채택에 대해서도 "라마포사 대통령의 미국의 일관되고 강력한 반대에도 기후위기와 기타 글로벌 과제를 다루는 G20 정상선언 채택을 강행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2026년 미국이 의장국을 맡으며 훼손된 G20의 원칙과 정당성을 회복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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