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인 2세‘도전의 역사’ ⋯미국 법조계의 벽을 넘다

2025-11-20 (목) 08:19:34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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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년 검사생활 은퇴한 브라이언 리 검사

▶ 가정폭력 전담 부서 창설 등 한인사회서 활동 “커뮤니티 검사”

한인 2세‘도전의 역사’ ⋯미국 법조계의 벽을 넘다

동료 부장검사들과 함께 한 브라이언 검사.

▶언어·선입견 등 장벽 깨고 주류사회 진입 차세대에 주는 메시지 커
▶검찰 은퇴는 “퇴장 아닌 커뮤니티를 위한 새로운 출발”

미국사회에서 ‘검사(Assistant District Attorney)’라는 직함은 단순한 공직자를 넘어 막중한 책임과 도덕성을 요구받는 자리다. 특히 이민 2세들에게 법조계 진출은 수십 년 전만 해도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꿈’이었다. 인맥도, 정보도, 언어도, 문화도 모두 장벽이었다. 그러나 그 험난한 길을 묵묵히 걸어온 한인 2세가 있다. 낫소카운티 검찰청에 브라이언 리(한국명 이석배, 55) 검사.

그가 2025년 11월 15일, 정확히 30년의 검사 생활을 마감하고 정년 은퇴한다. 그리고 그의 은퇴는 단순한 개인의 퇴장이 아니라, 미주 한인2세가 걸어온 도전의 역사, 그리고 앞으로의 가능성을 상징하는 사건이기도 하다.
한인 2세‘도전의 역사’ ⋯미국 법조계의 벽을 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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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이 부장검사?” ⋯존재조차 생소하던 시대
1977년, 어린 나이에 가족과 함께 미국 땅을 밟았던 브라이언 리 검사는 이민 1세대의 자녀들이 흔히 그랬듯, 학교와 가정 사이에서 언어와 문화의 장벽에 맞닥뜨렸다.


그러나 그는 특유의 성실함으로 퀸즈 베이사이드의 카도조 고교와 뉴욕 업스테이트 소재 올바니 뉴욕주립대 재정학과, 그리고 맨하탄의 페이스대 로스쿨을 차례로 밟으며 한 걸음씩 꿈을 향해 나아갔다.

동양인인 그에게 법조인의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특히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인 2세 검사라는 존재는 거의 전무했다. 편견과 보이지 않는 벽은 언제나 뒤따랐다. 그는 그때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하곤 한다.

“동양인으로서 2세가 검사로 들어온다는 것은 당시에 큰 모험이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먼저 길을 열어야 했습니다.”

■1995년, 퀸즈 검찰청에서 첫발을 내딛다
1995년, 그는 드디어 퀸즈 검찰청 검사로 임용되며 법조인으로서의 길을 시작했다. 당시는 한인 검사라고는 흔치 않았던 시절이었기에 그의 존재만으로도 한인사회에는 큰 울림이 있었다.

이후 그는 본인은 물론, 주위와 커뮤니티의 바람대로 2000년 가정폭력 전담 부서의 창설 멤버가 되어, 담당 검사로 활약했다.

특히 한인사회에서 ‘쉬쉬’하며 은폐되기 쉬운 가정폭력의 위험성을 확실하게 알리고 신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강연 및 커뮤니티 교육을 수년간 이어오며 “커뮤니티 검사”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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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낫소카운티 ‘첫 한인 부장검사’
20년의 세월을 한결같이 묵묵히 걸어오던 2015년, 그는 드디어 낫소카운티 검찰청 부장검사(Deputy Bureau Chief)라는 직책의 무거운 자리로 승진했다. 이는 뉴욕 롱아일랜드 지역에서 한인이 거둔 첫 주요 간부급 성과 중 하나였다.

그리고 2016년, 그는 마침내 디스트릭 코트부(경범죄 총괄)의 Chief of the District Court Bureau로 임명되며 검사 30명을 지휘하는 자리, 즉 조직 내 서열 10위권의 핵심 보직에 당당히 올랐다.


이 자리는 정치력, 전문성, 리더십이 모두 요구되는 쉽게 오르기 어려운 자리다. 한인으로는 전례가 없는 기록을 성취한 것이었다.

낫소카운티 검찰청장 마들린 싱가스는 그를 임명하며 이렇게 평가했다.
“브라이언은 법과 정의에 대한 일관된 신념을 가진 인물이며, 커뮤니티를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리더다.”

브라이언 리 검사는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다음과 같이 밝혔다.
“지난 20여 년 동안 검사로 근무해 오면서 올바른 법조인이 되고자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앞으로도 커뮤니티의 정의 실현을 위한 역할에 제 소임을 다하고 싶습니다.”

■미주 한인2세, 미국 시스템 속으로 들어가기까지
브라이언 부장검사의 30년 역정은 미주 한인2세가 미국사회의 주류 시스템 속으로 진입하는 과정 그 자체다.

언어 장벽, 법조계 특유의 네트워크 부족, 동양인에 대한 선입견, 문화적 소통 방식의 차이 등 이 모든 현실적인 장벽을 깨고 주류사회의 법과 정의의 중심에서 일했다는 사실은 다음 세대에게도 주는 메시지가 크다.

특히 그는 영어가 불편한 아시아계 피해자, 커뮤니티의 약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당신 편이 되어주는 검사”로 평가를 받았다.

■30년 근무 후 정년 은퇴
2025년 11월 15일, 그는 정확히 30년의 검찰 생활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주변 법조인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아 말한다.“브라이언 리 검사의 은퇴는 ‘퇴장’이 아니라 커뮤니티를 위한 새로운 출발점이다.” 학계, 비영리단체, 법률 교육, 멘토링 등 그가 걸어갈 길은 앞으로도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선구자’가 남긴 발자국
브라이언 리 부장검사의 이야기는 한 개인의 성공담을 넘어 미국이라는 거대한 사회 속에서 한인 2세가 어떻게 자리를 만들어 왔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기록이자 산 역사이다.

한인 검사 한 명의 등장은 단순히 법조계 진출의 확장이 아니라, 한인 커뮤니티 전체의 권익과 안전, 그리고 목소리를 키우는 일과 직결되는 일이다.
그의 발자취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한인 2세, 3세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꿈’을 꿀 수 있는 표본이 되면서, 그곳을 향해 힘차게 달려갈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주고 있다.

■브라이언 리 검사는?
그의 이력과 경력을 보면 그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며 활동을 했는가를 여실히 알 수 있다. 브라이언 리 검사의 오늘이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그대로 보여준다.

주위에 따르면 그는 평소 불쌍한 사람을 동정하며,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보살피려는 따뜻한 심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것은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성경 구절을 몸소 실천하려는 그의 소신과 의지, 삶의 철학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싶다.

브라이언 검사의 가족은 부인 매기 리 씨와의 사이에 대학생 2명, 고등학생 한 명 등 딸 세 명이 있다. 취미는 요리, 여행, 골프이고, 기회가 되면 선교여행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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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운동 만능⋯ 효심까지 지극한 우리집 복덩이”
■ 아들 자랑
브라이언은 딸 셋 다음으로 태어난 그 때부터 온 가족에게 행복감을 안겨준 우리 가정의 복덩이다. 어린 시절 풍족한 대가족, 신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브라이언은 7세때 부모와 함께 미국이민 길에 올라 뉴욕에 도착했다.

바쁜 이민생활 가운데서도 브라이언은 누나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면서 대학에 진학했다. 브라이언은 전교 회장은 물론, 공부, 운동도 다 잘하고 인기도 많아 늘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 브라이언은 모든 면에 자상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효성이 지극한 아들” 이다.

부모에게 효도여행을 보내드리면서, 대신 혼자 직원들을 관리하며 가계를 운영 할 때도 있었다. 십계명 중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가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리라”는 바로 아들 브라이언에게 이루어진 계명인 것 같다.

아들은 가정에서는 이해심 많은 남편, 딸 세 명의 자상하고 따뜻한 아빠이다.
브라이언의 어머니 이정희 여사의 말이다.

“저! 엄마가 이 세상 살아가는 이유 중 하나가 우리 아들입니다.” 브라이언을 낳았을 때는 “저! 아들 낳았어요,” 라고 자랑했는데, 지금은 저! 훌륭한 아들 주셨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성실·겸손 기본⋯요리까지 잘하는 사랑의 결정체”
■ 사위 자랑
한인사회에서 수년 동안 회장 및 단체장을 역임하며 봉사한 아버지를 도우면서 자라는 브라이언을 눈여겨 본, 서울 종로교회 최거덕 목사의 딸, Grace Mission Center 창립자 최은희 원장(이화여고 선배)이 여사가 우리 딸 매기를 브라이언에게 중매해서 결실을 맺게 됐다.

브라이언의 부인이 된 우리 딸은 기독교 교육을 위주로 한 가톨릭 초, 중 고교를 다녔다. 그리고 Bryn Mawr College에 이어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를 졸업했다.

이들은 만남 첫날 오후7시에 만나 새벽2시에 헤어졌는데, “서로 “better than Me” 라고 할 정도로 쌍방 첫 눈에 반해서 천생연분이 되었다. 사위는 진실되고 겸손하며 성실하고, 또한 상대방을 존중하며 먼저 도와주려고 하는 준비된 사람이다. 바쁜 일과 중에도 양가 부모를 하루가 멀다 하고 초대하여 손수 요리해서 대접한다.

장인은 그 모습에 “요리를 잘하는 사람은 창조적! 요리를 맛있게 하는 사람은 사랑이 풍성한 사람!” 이라고 감격하며 늘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창조적이고 사랑의 결정체인 브라이언은 하나님께서 예비한 사위이자, 우리 집안에 큰 보물이고 귀한 선물이다.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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