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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타이레놀과 아세트아미노펜

2025-11-20 (목) 12:00:00 이동현 / 한국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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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보건복지부 장관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는 대표적 백신 음모론자다. 그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백인·흑인을 공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며 ‘홀로코스트’ 음모론을 퍼뜨리기도 했다. 탐사뉴스 전문 프로퍼블리카에 따르면 케네디 장관이 백신 접종 의무화 반대 운동으로 2020년 이후 3년 동안 모금한 후원금은 1억 달러(약 1,458억 원)가 넘는다고 한다. 음모론 돈벌이를 한 셈이다.

■ 케네디 장관은 지난 9월 의학적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임신 중 타이레놀 복용 시 자폐 및 주의력집중장애(ADHD) 위험성을 높인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의료윤리 분야 석학 아서 캐플란 뉴욕대 의대 교수는 “노골적 거짓말과 위험한 조언의 가장 슬픈 전시”라며 “임신부와 태아 생명을 위험에 빠뜨렸다”고 비난했다. ‘아세트아미노펜’을 주성분으로 하는 타이레놀은 1955년 출시돼 안전성이 검증된 해열·진통제로, 임신부나 영유아가 복용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해열제라 그랬다.

■ 국내에서 필수의약품을 쓸 수 없게 됐을 때 혼란은 코로나19 대유행 때 일부 확인됐다. 타이레놀 품절 사태가 벌어지면서 임신부와 영유아를 둔 부모들이 발을 동동 굴려야 했다. 같은 아세트아미노펜 성분 복제약(제네릭)이 70여 종 출시돼 있지만, 의사들이 타이레놀만 처방했기 때문이다. 타이레놀 등 상표명으로 처방하지 말고 주요 선진국과 같이 아세트아미노펜과 같은 성분명으로 처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의사 단체들은 “국민 안전을 위협한다”며 결사반대했다.

■ 의사·약사는 2000년 의약분업 이후 25년째 성분명 처방제 도입을 놓고 다투고 있다. 의사들은 복제약은 약효에 차이가 있다고 반대하고, 약사들은 오리지널 약과 동일하다며 찬성한다. 약품 품질 관련 정보를 공개하면 누구 말이 맞는지 쉽게 따져볼 수 있을 텐데, 의무적으로 공개토론한 미국과 달리 우리 정부는 비공개로 묶어 두고만 있다. 이런 현실에서 성분명 처방이 시행돼 봤자 제약사 로비가 의사에서 약사로 옮겨갈 뿐이라는 말이 나온다. 진정 ‘국민 건강’을 위한다면 약의 품질·가격 정보부터 투명하게 공개해야 할 일이다.

<이동현 / 한국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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