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민주체제는 전쟁에 약하다고?

2025-10-20 (월) 12:00:00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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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카펫 위로 시진핑, 푸틴, 김정은이 등장했다. 뒤이어 미얀마, 벨라루스, 이란 등 20여개 독재체제 지도자들이 입장했다. 2025년 9월 3일 이른바 전승절을 맞아 중국 베이징 톈안먼에서 전개된 광경이다.

중국의 2차 대전 승리 80주년을 축하하고 기념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권위주의 축(Axis of Authoritarianism)이 세계의 민주주의 국가들을 향해 세과시를 하는 ’파워 쇼‘의 무대였다.

이 무대를 통해 시진핑은 세계는 전쟁이냐, 평화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여 있다고 선언했다. 자유민주주의 세계를 향해 전쟁을 선포하고 있다고 할까, 그런 모양새였다.


‘권위주의체제와 민주주의체제가 전쟁에 돌입하면 어느 쪽이 이길 확률이 높은가’- 톈안먼광장에서 벌어진 그로테스크한 이 광경과 관련해 새삼 제기되고 있는 질문이다.

우유부단하다. 퇴폐적이다. 연약해 흐물흐물할 정도다. 민주체제, 특히 서방의 자유민주주의체제를 평가할 때 흔히 따라 붙는 표현이다. 한 마디로 전쟁에 적합하지 못한 체제라는 것이다.

강인하다. 일사불란하다. 상무적이다. 권위주의 독재체제를 설명할 때 나오는 평가다. 이 같은 비교와 함께 권위주의체제가 더 전쟁에 강하다는 주장이 단연 우세하다.

그 주장은 고대 그리스시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독재체제 스파르타가 민주체제 아테네에 승리를 거둔 사실과 관련, 오래전부터 각인돼왔다.

21세기 들어 첫 20년을 돌아보아도 그 주장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이라크 전쟁은 실패한 전쟁이란 인식이 강하다. 실제로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는 굴욕에 가까운 참사로 기록되고 있다.

또 민주주의 체제인 아르메니아는 아제르바이잔과의 전쟁에서 번번이 패했다. 푸틴 러시아는 조지아 침공, 크림반도 병합작전 등에서 연전연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최근 3년여 기간 동안 흐름은 역전됐다.


2022년 2월 푸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했다. 그러자 좌우를 막론하고 군사전문가라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우크라이나 조기붕괴에 한 표를 던졌다.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전쟁은 3년이 넘어 4년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군은 100만 이상 사상자를 내고 있다.

이스라엘에 뒤이어 미국도 이란 공습에 나섰다. 지난 6월 말께에 벌어진 상황이다. 그러자 미국 내 좌파, 우파 양 진영 모두에서 일제히 경고의 사이렌이 울려 펴졌다.

이란의 반격으로 미군은 엄청난 사상자를 낼 것이다, 미국은 세계 곳곳에서 이란 회교정권이 사주하는 파상적인 테러공격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등등 이란과의 전쟁이 가져올 최악의 시나리오들만 제시됐던 것.

벙커 버스터가 투하되자 이란 회교정권은 바짝 꼬리를 내렸다. 제대로 반격조차 못한 것이다. 그리고 함께 ‘독재의 축’을 형성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도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지난 3년여 간의 역전의 흐름’은 일시적 현상이 아닐까. 아니, 민주체제가 줄곧 일패도지의 상황에 몰렸던 21세기 첫 20년이 오히려 이례적 시기이었다는 것이 노아오피니언의 지적이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서방의 민주주의 체제는 전쟁에 적합하지 못한 체제라는 인식은 오류임이 바로 드러난다.

대혁명이후 프랑스는 유럽 열강들과의 전쟁에서 거의 번번이 승리를 거두었다. 앵글로 아메리카는 1, 2차 양차대전은 물론, 냉전도 승리로 이끌었다. 인구래야 수백만에 불과한 이스라엘은 방대한 인구의 아랍국들과의 전쟁 거의 대부분에서 승리했다.

반면 민주주의 체제를 허약하고, 퇴폐적이라고 비웃었던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비참한 최후와 함께 역사의 무덤 속으로 사라졌다.

2014년에 발표된 한 관련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1816년에서 1982년 기간 동안 발생한 전쟁 중 민주체제가 승리한 전쟁은 84%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민주체제와 권위주의 체제와의 전쟁에서 민주주의체제 승리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것이 증명됐다고 할까.

왜 권위주의 독재체제는 생각 밖으로 전쟁에 취약한가.

체제의 경직성이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독재체제의 최고 권력자는 아첨꾼들에게 둘러싸이기 십상이다. 주변에서는 독재자가 듣고 싶어 하는 말만 하기 마련이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결정 과정이 그랬다. 푸틴은 주변의 군사안보전문가 의견을 모두 들었다. 답은 하나같이 며칠, 길어야 3~4 주내에 완전 승리를 거둔다는 것이었다. 그게 푸틴이 듣기 원한 답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아첨꾼에 둘러싸여 있다. 거기에다가 부패할 대로 부패했다. 독재체제의 또 다른 속성으로 부패는 전력을, 더나가 장병의 사기를 떨어뜨리면서 패전을 불러오고 있다는 지적이다.

중국공산당이 지배하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이어지는 지적이다.

그렇다고 중국군이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독재 권력의 이 같은 맹점을 감안해 지나치게 적을 과대평가하는 정책상의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게 내려지는 결론이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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