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금운용 단체 냇캐스트 “반도체 비자금” 비난·지원 철회
▶ 기금 장악·보조금 수혜자 선정 “처음부터”…업계는 혼란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왼쪽)[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이전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미국의 반도체 부흥을 위해 시작한 74억 달러(약 10조원) 규모의 핵심 기술 지원 계획을 사실상 무력화하고 있다고 미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가 30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는 반도체 연구개발(R&D)을 주도할 국립반도체기술센터를 운영하기 위해 비영리단체 냇캐스트(Natcast)를 설립했다.
이 단체에는 엔비디아, 인텔, 삼성전자 등 200여 개의 세계적 기업이 회원사로 등록했다. 냇캐스트는 74억 달러의 기금을 운용하며 업계 지원을 위한 연구개발(R&D) 시설 및 인력 양성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다.
그러나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냇캐스트를 "바이든 충성파의 주머니를 채운 반도체 비자금"이라고 비난하며 이 단체에 대한 지원을 철회하고, 자금 회수를 단행했다.
그는 냇캐스트가 법적 기반이 허술하며 불법적으로 설립됐다는 법무부의 새로운 유권해석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면서 연방 기금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겠다며 기금 장악을 선언하고 나섰다.
이에 냇캐스트는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졌고 그동안 추진돼 왔던 지원 사업은 먹구름이 생겼다.
110여 명에 달했던 직원의 90% 이상이 해고 통보를 받았고, 각 주에 약속됐던 수십억 달러 규모의 지원금도 불투명해졌다.
11억 달러가 투입될 예정이던 애리조나 주립대의 차세대 반도체 시설과 뉴욕 올버니 나노테크 단지의 첨단 연구개발(R&D) 허브 구축 계획 등이 모두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상무부는 기금을 반도체 R&D에 사용할 계획이지만, 보조금 수혜자 선정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도체 업계는 극심한 불확실성에 휩싸였다. 인텔과 IBM, AMD 등 주요 기업들은 러트닉 장관의 결정 이후 상무부 관계자들과 개별적으로 접촉하며 자사의 프로젝트 지원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또 대부분의 기업은 향후 반도체 보조금 심사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을 것을 우려해 공개적인 반대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기업들은 행정부의 표적이 될까 두려워하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이 자금을 특정 지역이나 정치적 지지 기반에 유리하게 배분하려 한다고 지적한다. 트럼프 측근들이 기금 관리위원회에 대거 포진하면서 투명성 부족과 이해충돌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기존 계획을 백지화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통해 반도체 보조금을 직접 통제하며 "더 나은 조건"으로 재협상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이 과정에서 기업의 지분을 요구하는 등 과도한 개입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번 사태는 초당적으로 추진된 반도체법이 정권 교체에 따라 어떻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이라고 폴리티코는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