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위에 세운 시청- 고집으로 지은 아름다움
밤베르크에 처음 도착하면, 그저 평범한 중세 도시처럼 보인다. 붉은 지붕과 고풍스러운 골목, 어디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유럽의 한 장면. 그러나 강 한가운데 우뚝 선 시 청사를 마주하는 순간, 깜짝 놀라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그 모습이,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찬란하게 빛나기 때문이다.
레그니츠 강 위에 세워진 이 시 청사는 단순한 행정 건물이 아니다. 밤베르크가 교회권력과 시민 자치의 긴장 속에 있던 시절, 주교는 시청을 위한 땅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협상 끝에 강과 도시를 잇는 다리 위, 중간 지점에 시청을 세우는 절충이 이루어졌고, 그 위에 시민들은 인공섬을 조성해 시청을 올렸다. 전설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그 전설 속엔 타협을 통해 공존을 선택한 도시의 지혜가 숨어 있다. 권력과 자유, 신앙과 삶이 맞서던 시대의 흔적이 건물의 돌벽 하나하나에 고요히 스며 있다. 밤베르크 구 시 청사는 단지 고집의 결과가 아닌, 양보와 합의로 지켜낸 자치의 상징이다. 오늘도 그곳을 지나는 바람과 강물은, 그 조용한 승리의 이야기를 오래도록 전하고 있다.
말없는 기수-침묵에도 얼굴이 있다(밤베르크 기수 조각상 이야기)
언덕을 오르면 밤베르크 대성당이 나온다. 화려하진 않지만 묵직한 이곳엔 하인리히 2세와 그의 아내가 잠들어 있다. 내부는 절제된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 그 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밤베르크 기수’ 조각상이다. 말을 탄 귀족이 살짝 미소 짓는 듯한 표정으로 서 있다. 중세 독일 조각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다. 성당 옆 신궁전은 대주교의 집이지만, 궁정 귀족의 저택 같다. 신궁전 뒤편 장미정원에 서면 밤베르크 구시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훈연된 저녁- 기억을 마시는 시간
해가 기울 무렵이면, 밤베르크의 향이 골목마다 퍼진다. 그 중심엔 1405년부터 장사를 이어온 ‘슐렝케를라(Schlenkerla)’가 있다. 간판 위엔 ‘1405’라는 숫자가, 그 아래엔 비틀비틀 걷는 작은 인물 그림이 걸려 있다. 이름부터 이야기를 품은 집이다. ‘슐렝켈’은 ‘비틀비틀 걷다’는 뜻이다. 훈연 맥주를 마셔보면 왜 그런 이름인지 알게 된다. 불에 그을린 고기 향이 입 안을 감싸고, 한 모금에 마음마저 훈제된다. 시간과 기억이 맥주잔 안에서 천천히 피어오른다.
시간을 견딘 맛- 따뜻한 위로 한 접시
저녁은 10년 전에도 감탄했던 슈페찌알(Spezial)에서 먹었다. 1536년부터 영업 중인 이곳은 ‘살아 있는 문화재’ 같다. 메뉴는 간단하다. 돼지 어깨살 구이(Schaufele), 감자, 소시지, 사우어크라우트, 그리고 훈제 맥주. 그런데 이 조합이 사람을 울린다. 둘이 먹고 36유로. 이런 가격이라니, 고맙기까지 하다. 화려하진 않지만 단정하고, 검소하지만 따뜻하다. 이런 식탁이야말로 여행의 진짜 위로다. 오백 년 동안 그렇게 삶을 견뎌온 맛이 이 한 접시에 담겨 있었다. 나는 언젠가 다시 이 향이 내 코끝을 스칠 때 알게 될 것이다. 내가 그리워한 것은 도시가 아니라, 그 안에서 피어난 내 마음이었다. 밤베르크는 그렇게, 내 안에서 천천히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밤베르크 여행 팁
•밤베르크 구시청: 강 위에 세운 중세 시청, 외벽 프레스코화와 다리 풍경이 아름답다.
•대성당 & 신궁전: 밤베르크 기수 조각상, 신궁전의 장미정원 전망 추천.
•슐렝케를라: 1405년부터 이어온 훈제 맥주집. 라우흐비어는 꼭 맛보길.
•슈페찌알: 훈제 맥주와 돼지 어깨살 구이가 유명한 맛집, 예약하면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