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총영사 4명 공석… 외교부 인사 ‘늑장’ 대미 라인 ‘공백’

2025-09-10 (수) 12:00:00 노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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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내 총영사관 9곳 중 뉴욕·애틀랜타 등 4곳이나

▶ 이재명 정부 인사 지연에 “재외국민 보호 약화” 지적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외교부의 공관장 인사가 지연되면서 미국 내 주요 총영사관의 공백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다. 특히 한인 밀집 지역에서 총영사가 잇따라 교체되거나 사퇴했지만 후속 인사가 늦어지면서, 현지 사건·사고 대응과 재외국민 보호 기능이 약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지난 4일 조지아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에서 연방 당국이 대규모 이민 단속을 벌여 한국인 300여 명을 체포·구금하자, 이재명 대통령은 “주미대사관과 애틀랜타 총영사관을 중심으로 총력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당시 주미대사와 애틀랜타 총영사 모두 공석이었다.

주미대사로 내정된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은 주재국 아그레망(부임 동의) 절차가 끝나지 않아 부임하지 못했고, 애틀랜타 총영사관은 서상표 총영사가 지난 6월 정년 퇴임한 뒤 후임이 임명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조기중 워싱턴DC 총영사가 급히 애틀랜타로 내려가 현장을 총괄하는 이례적 상황까지 벌어졌다.


현재 LA를 비롯한 미국 내 총영사관 9곳 중 뉴욕·휴스턴·호놀룰루·애틀랜타 등 4곳이 수장 부재 상태다. 김의환 뉴욕 총영사는 광복절 기념사 발언 논란 끝에 지난 1월 사의를 표한 뒤 7월 귀임했고, 특임공관장 출신인 정영호 휴스턴 총영사도 같은 달 조기 귀국했다. 배우자의 ‘관저 요리사 갑질’ 의혹으로 논란을 빚은 이서영 호놀룰루 총영사 자리도 비어 있다. 전 세계 46개 총영사관 가운데 17곳, 약 37%가 공석으로, 대미 라인뿐 아니라 글로벌 외교 현장에서의 공백도 뚜렷해진 상황이다.

이번 공석 사태는 지난 7월 새 정부 출범 직후 외교부가 전 세계 180여개 재외공관장들에게 일괄 사직서를 요구하면서 불거졌다. 정권 교체 때마다 반복되는 관행이라는 게 외교부 설명이지만, 인사 지연으로 공백이 더 커졌다는 평가다.

외교부 측은 “공관장은 대통령 신임을 전제로 임명되는 자리이기 때문에 새 정부 출범 시 일괄 사직서를 받아왔다”며 “능력이 인정되면 유임되기도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인사회에서는 “정권 교체기의 관행 때문에 대미 외교 현장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실제 현장 차질은 이미 드러나고 있다. 이번 조지아주 대규모 구금 사태처럼 긴급 사안이 발생했을 때, 현지 총영사가 없으면 초기 대응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은 물론 중국·일본 등 재외동포 밀집 지역에서도 수장 공석이 이어지면서 위기 대응과 공공 서비스 제공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공관 내부 잡음도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 호놀룰루 총영사관의 경우 총영사 배우자가 관저 요리사에게 폭언과 간섭을 일삼고 피해자에게 화상까지 입힌 뒤 진술서를 강요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외교부가 감찰에 착수한 바 있다. 뉴욕 총영사관도 총영사의 김건희 여사와의 인연 논란, 광복절 기념사 발언 등이 도마 위에 올랐다.

한편 문재인 정부 시절 임명된 김영완 LA 총영사의 교체 여부도 관심사다. 김 총영사는 2022년 3월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부임해 한인사회 소통과 민원 서비스 개선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았으나, 재외공관장 인사가 늦어지면서 새정부 들어서도 근무를 이어가는 보기 드문 사례가 되고 있다. LA 총영사관의 한 관계자는 “현재로선 총영사 후임 인사와 관련된 새로운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공관장 인선을 준비 중이며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신속히 인사를 마무리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인사 지연이 단순 행정 절차를 넘어 재외국민 보호와 직결되는 문제로 이어지면서, 한인사회와 외교 현장의 불안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가 조속히 공백 해소와 안정적 인사 체제 구축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노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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