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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내 마지막 명함은 자선사업가… 인생 2막 출발합니다”

2025-09-03 (수) 12:00:00 노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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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퇴하는 고석화 뱅크오브호프 명예회장
▶ 윌셔와 BBCN 합병…뱅크오브호프 설립 주도

▶ “자산 1위 호프 성공이 곧 한인사회 성공”
▶ “봉사단체·청년들 도우며 계속 기여할 것”

[인터뷰] “내 마지막 명함은 자선사업가… 인생 2막 출발합니다”

지난 40년간 한인 은행의 태동과 발전의 역사와 함께 한 고석화 뱅크오브호프 명예회장은 2일 본보와의 인터부에서 이제 자선사업가로서의 인생 2막을 시작하려 한다고 말했다. [노세희 기자]

“내 삶의 절반 이상을 같이 했던 금융인으로서의 여정이 그리 녹록치만은 않았다. 때로는 황홀했던 순간과 벅찬 보람을 느낄 때도 있었지만 가슴을 찌르는 고통과 두려움의 시간이 더 많았다. 지금 이 순간 숱한 회한도 남는다. 주머니 속 유리잔 같은 아슬아슬한 삶을 살아오면서 개인적인 욕구와 아픔을 감내하고 희생하며 오직 은행만을 사랑했고 은행만을 위해 열정을 다했음을 감히 고백한다. 이같은 은행 사랑의 일념이 내 전진의 원동력이었고 자산규모 185억달러의 미국 중견 은행으로 성장한 뱅크오브호프의 밑거름이 됐다.” <자서전 ‘고독한 도전… 아메리칸 드림을 넘어’의 프롤로그 중에서>

지난 40년간 한인 은행권의 성장과 발전을 이끌어온 뱅크오브호프 고석화(80) 명예회장이 올해 말 은퇴를 선언했다. 한인 금융계의 산증인으로 불려온 그는 은퇴를 앞두고 미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동안의 발자취와 소회를 털어놓았다.

■ 1971년, 미국행 그리고 철강무역


부산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청년 고석화는 1971년, 아내 고정옥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이후 철강무역회사 ‘퍼시픽 스틸 코퍼레이션’을 설립해 안정적인 사업 기반을 다졌다. 거래 과정에서 미국 은행을 이용할 때마다 그는 “우리 한인들에게는 우리만의 은행이 필요하다”는 절실한 깨달음을 얻었다.

이 문제 의식은 그가 1986년 미국 최초의 한인은행인 윌셔스테이트은행 이사로 합류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는 훗날 한인 금융사의 판도를 바꾸는 시작이 됐다.

■ 벼랑 끝에서 지켜낸 은행

1990년대 초반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자 한인 은행권은 붕괴 직전까지 몰렸다. 1993년, 은행감독국은 윌셔은행에 조건부 영업중단명령(C&D)을 내렸고 사실상 폐쇄 직전이었다.

이때 고 회장은 이사장으로 추대되어 증자를 주도했다. 투자자를 찾지 못할 때는 자신의 재산을 투입하며 은행을 지켜냈다. “스트레스로 위궤양까지 앓았다”는 그의 회고처럼 사투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특히 제너럴 머니오더사와의 소송은 최대 고비였다. 1심 패소로 파산 위기에 몰렸지만, 항소심에서 승소하며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이후 윌셔은행은 SBA 융자 전문 은행으로 체질을 개선했고, SBA 융자 부문에서 미 전국 22위권 은행으로 성장했다.

■ 합병의 결단, 뱅크오브호프의 탄생


고석화 회장이 일관되게 강조한 것은 “규모의 경제와 주류사회 진출”이었다. 단순히 살아남는 은행이 아니라, 미국 금융권에서도 인정받는 한인은행을 만들고자 했다.

2016년, 그는 윌셔은행과 BBCN 은행의 동등 합병을 결단했다. 지분율이 줄어드는 것을 우려한 가족과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는 “인생은 영원하지 않다. 지금 주류사회에 뿌리내려야 한다”는 신념으로 밀어붙였다.

그 결과, 미 전역 4,500여개 은행 중 91위, 한인은행 최초로 ‘탑100 은행’에 포함된 뱅크오브호프가 탄생했다. 그는 초대 이사장과 명예회장을 역임하며, 오늘날 자산 185억달러가 넘는 미주 최대 한인은행으로 성장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고 회장은 뱅크오브호프의 지분 2.71%를 소유한 개인 최대주주로 뱅크오브호프의 경영을 지원하고 뒷받침하면서 은행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핵심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 회장은 미국에서 소수계 커뮤니티가 성공하려면 반드시 자체 은행이 있어야 한다며 뱅크오브호프의 성장과 성공이 곧 한인사회의 성공이라고 강조했다. 고 회장의 헌신과 결단으로 미주 한인사회는 미국에서 중국계에 이어 가장 역동적이고 규모가 큰 자체 금융권을 갖고 있다.

뱅크오브호프 등 한인은행들은 미주한인들에게 필요한 사업 자금을 제공하는 등 한인사회 경제 발전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 인생 2막, 자선사업가로

“은행을 위해 열정을 다한 인생 1막을 마치고, 이제는 사회에 봉사하는 인생 2막을 살고 싶습니다.”

2005년, 고 회장은 부인 고정옥 여사와 함께 고선재단을 설립했다. 두 사람은 500만달러를 출연해 출발했고, 이후 1,000만달러 규모로 확대했다. 무엇보다 재단 운영비를 쓰지 않고 기부금 전액을 사회에 환원해온 것이 특징이다.

재단은 지금까지 20여개 비영리 봉사단체에 250만달러 이상을 지원했고, 매년 수십만 달러를 미 전역 커뮤니티에 기부하고 있다. 또한 모교 연세대학교에 100만달러를 기부해 ‘고선 장학금’을 마련, 지금까지 100여명의 학생에게 전액 장학금을 지급했다.

아내가 지난해 세상을 떠난 뒤, 두 아들(장남 샘 고, 차남 피터 고)과 딸(박승현), 그리고 사위·며느리들이 재단 운영에 합류했다. 고 회장은 “언젠가는 손주 세대까지 이어지는 영속적 가족재단으로 발전시키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또한 고 회장은 2016년부터 남가주 최대 병원인 시더스-사이나이 메디칼센터의 유일한 한인 종신 이사로도 활동 중이다.

■ 삶의 철학과 은퇴 이후

고 회장은 삶의 두 가지 신조를 자주 강조한다. 하나는 불교의 가르침인 제행무상(諸行無常),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다”는 깨달음이다. 또 하나는 경천애인(敬天愛人), 즉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라”는 삶의 자세다.

“요즘은 삶 자체가 소풍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은퇴 후에는 어려운 이웃들에게 제가 정성껏 준비한 소풍 도시락을 나눠주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는 지금도 규칙적인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화·목 오전에는 퍼스널 트레이닝, 오후에는 탁구를 배우고, 수·토 오전에는 골프를 친다. 목요일 오후에는 기타 레슨을 받고 있는데, 오는 12월 10일로 예정된 은퇴식에서는 직접 두 곡을 연주할 예정이다.

■ 아름다운 뒷모습

“사람은 떠날 때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합니다다.”

지난 40년간 한인 은행의 역사와 함께한 고석화 명예회장은 이제 무대 뒤로 물러나려 한다.

은행만을 사랑하며 한인사회의 버팀목이 되어온 그는 이제 자선사업가로서 또 다른 뒷모습을 남기려 한다. 그의 은퇴는 한 시대의 끝이지만, 동시에 또 다른 시작이다.

고석화 명예회장 주요 약력

1945년 - 부산 출생, 부산고 졸업,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1971년 - 가족과 도미, 철강무역회사 ‘퍼시픽 스틸 코퍼레이션’ 설립
1986년 - 미국 최초 한인은행 윌셔스테이트은행 이사 합류
2005년 - ‘고선재단’ 설립, 500만달러 출연
2006년 - 연세대 명예경영학 박사학위
2007년 - ‘엘리스 아일랜드 메달’ 수상
2008년 -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 제15대 회장
2016년 - 윌셔스테이트은행과 BBCN 은행 합병, 뱅크오브호프 출범
2017년 - 뱅크오브호프 명예회장 취임
2023년 - 국민훈장 모란장 수상

<노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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