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정부 외국인 허가제 도입
▶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
▶ 위반 시 취득가액 10% 벌금
▶ ‘재외동포 예외조항 필요’ 지적

한국 정부가 외국인의 부동산 취득 실거주 요건을 강화하면서 미주 한인들 사이에서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다. 한국의 한 아파트 단지 전경. [연합]
한국 정부가 최근 발표한 부동산 실거주 요건 강화 제도가 미주 한인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새 제도에 따르면 주택거래를 허가 받은 외국인은 2년간 실거주해야 하며, 이를 어길 경우 토지 이행강제금을 내야 한다. 특히 한국 국적을 상실한 미국 시민권자 한인들이 ‘외국인’으로 규정되면서, 한국 부동산을 보유할 예정이거나 향후 역이민을 고려하는 해외 한인들 사이에서 불안감이 확산하는 모습이다.
한국 국토교통부는 지난 21일 서울시 전역, 인천시 및 경기도 주요 지역을 외국인 토지거래허가구역(이하 허가구역)으로 지정했다. 허가구역은 ‘부동산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외국인 등이 토지를 거래하려면 사전에 부동산 소재 지방자치단체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구역으로, 사전 허가 없는 거래계약은 효력이 발생하지 않아 토지를 취득할 수 없다. 이달 26일부터 내년 8월 25일까지 1년간 지정 효력이 발생하며 한국 정부는 향후 시장 상황을 고려해 필요시 기간 연장을 검토할 예정이다.
이번 제도의 핵심은 외국인의 실거주 요건을 강화한 것이다. 정부에 따르면 주택거래를 허가받은 외국인은 허가일로부터 4개월 이내 해당 주택에 입주해야 하며, 주택 취득 후 2년간 실거주해야 한다. 위반사실이 확인될 경우 실제 거주까지 토지 취득가액의 10% 이내에서 이행 명령 위반 사유에 따라 이행강제금을 내야 한다.
한국 정부는 이번 제도의 취지를 “투기 억제와 실수요자 보호”라고 설명하지만, 미주 한인사회는 “투기와 교민의 합리적 수요를 동일선상에 놓는 건 불합리하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미주 한인사회에서 한국 부동산은 단순한 투자 수단을 넘어 ‘언젠가 돌아갈 곳’, ‘은퇴 후 안식처’, ‘부모 재산 상속’과 직결돼 있다. 하지만 실거주 요건이 현실화되면 이러한 계획이 모두 무위로 돌아갈 수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국내 전체 주택 약 1,931만 구 가운데 외국인이 보유한 주택은 10만216가구로 전체의 0.52% 수준이다. 이 가운데 중국인이 56%로 가장 많고, 미국인이 22%로 2위를 차지한다. 특히 미국 국적자 중 상당수는 미주 한인들로 추정된다.
한국에 부모가 살고 있는 박모(58)씨는 “이민 와서 어렵게 시민권을 취득했는데, 한국에서는 ‘외국인’으로 분류돼 제약을 받는다니 납득하기 어렵다”며 “향후 부모님 집을 상속받는 문제도 복잡해질 것 같아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은퇴자인 김모씨는 “우리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세대인데, 시민권자라는 이유로 외국인 취급을 받으며 집 한 채도 살 수 없다니 억장이 무너진다”며 “한국 정부가 교민들을 ‘투기꾼’과 똑같이 취급하는 건 부당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렌지카운티(OC)에서 자영업을 하는 이모(55) 씨는 “한인들은 집을 단순한 투자처가 아니라 ‘마지막 안전망’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실거주를 강제한다는 건 사실상 ‘외국인 소유 금지’와 다를 바 없다”며 “교민들의 정서적 유대까지 끊는 것 같아 서운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재외동포들을 대상으로 한 원포인트 예외조항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미주 한인들의 한국 부동산 수요는 단순한 투자가 아니라 귀국·은퇴·가족 문제와 직결된 경우가 많다”며 “정부가 교민 전용 특별 규정을 마련하는 것도 하나의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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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