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수요에세이] 여섯 인물에 둘러싸인 시인 롱펠로우

2025-07-23 (수) 12:00:00 이현숙 수필문학가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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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화한 시로 ‘미국의 국민 시인’이라 불리는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우. 그는 뉴잉글랜드 초기 정착자의 후손으로,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세 살에 글을 깨우치고, 열네 살에 대학에 들어간 그는 어린 시절부터 비범한 재능을 보였다. 보든대학 졸업 후 유럽을 여행하며 여덟 개 국어를 익혔고, 단테의 『신곡』을 영어로 처음 번역해 원작의 아름다움을 살려냈다는 찬사를 받았다. 하버드 대학에서 18년간 교수로 재직하며 많은 시와 산문을 발표했다.

그가 생의 절반 이상을 보낸 케임브리지의 집에서 찰스 강 방향으로 걸어가면 ‘롱펠로우 공원’이 나타난다. 잔디밭을 지나 내려가면 하얀 벽을 배경으로 한 흉상이 서 있고, 그 뒤에는 그의 시에 등장하는 여섯 명의 인물상이 반원형으로 둘러서 있다. 조각가 다니엘 프렌치가 1913년에 제작한 이 기념물은 마치 시인이 시 속 세계의 인물들과 함께 살아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맨 왼편에는 <마일스 스탠디시의 구혼>의 주인공, 장총을 든 퓨리턴 군인 스탠디시가 서 있다. 그는 플리머스 식민지의 실제 군사 지도자였으며, 탐험대를 이끌고 초기 정착에 기여한 인물이다. 두 번째는 백합을 든 천사 샌달폰. 키가 너무 커서 지상에 서 있으면 머리가 하늘에 닿는다는 전설 속 존재로, <처녀시절>이라는 시에서 순수하고 마법 같은 힘을 상징한다.


세 번째는 <마을 대장장이>의 프랫. 앞치마를 두른 채 묵묵히 서 있는 그의 모습은 성실한 일상의 아름다움을 담아낸다.“일하며, 즐거워하며, 슬퍼하며 오늘도 묵묵히 살아가네.” 마을 아이들은 대장장이가 불꽃을 튀기며 연장을 만드는 모습을 구경하며 자란다. 늙은 밤나무가 베어졌을 때, 아이들은 그 나무로 안락의자를 만들어 시인에게 선물했다고 한다.

네 번째는 <스페인 학생>의 빅토리안. 단발머리를 휘날리며 애인의 발코니 아래서 세레나데를 부르는 듯한 자세로 서 있다. “여름 밤의 별들이여/ 그녀가 잠들었단다./내 아씨 잠들어 있다!” 젊은 날 롱펠로우가 유럽을 여행하며 느낀 낭만적 정서가 이 시에 담겨 있다.

다섯 번째는 <에반젤린>의 여주인공. 1755년 아카디아에서 프랑스계 이민자들이 영국군에 의해 강제 이주당하던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헤어진 연인을 찾아 생애를 바치는 여인의 이야기를 담았다. 첫 부인 매리와의 사별을 슬픔으로만 남기지 않고, 사랑의 서사시로 승화시킨 작품이기도 하다.

마지막 여섯 번째는 <히어와서의 노래>에 등장하는 북미 인디언 전사 히어와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서 있는 그의 모습은 지혜와 용기의 상징이다. 할머니 노코미스로부터 전설과 자연의 비밀을 배우며 부족의 지도자로 성장한다. “무지개는 시든 꽃들이 하늘에서 피어난 것”이라는 시구는, 자연에 대한 경외와 인디언 문화에 대한 애정을 동시에 전한다.

롱펠로우는 종종 철학적 깊이나 언어적 정교함이 부족하다는 비평을 받기도 하지만, 그의 시는 삶과 자연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썰물이 나가면 밀물이 온다.” 그의 시 <잃은 것과 얻은 것>에서처럼, 절망 이후에 반드시 희망이 찾아온다는 믿음을 담아낸다.

여섯 명의 시 속 인물들의 배웅을 받으며, 나도 그가 걸었을 찰스 강의 롱펠로우 다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현숙 수필문학가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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