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지평선] 스테이블코인과 카지노 칩

2025-07-22 (화) 12:00:00 정영오 / 한국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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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의심이 사라지지 않는 가상화폐가 드디어 제도권에 진입했다. 지난 1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니어스 법’에 서명하면서부터다. 민간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때 미 달러나 단기 국채 등을 1 대 1 담보로 보유해야 한다. 이전 스테이블코인은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달러와 연동하는 형태였으나, 한국 기업이 발행한 테라·루나가 2022년 대폭락한 것을 계기로 실물 자산 담보를 기반으로 한 스테이블코인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 스테이블코인은 카지노 업체가 발행하는 칩과 동일하다. 카지노에 입장하기 전 100달러를 업체에 내면 100달러어치 칩을 받고, 퇴장할 때 남은 돈을 돌려받는다. 왜 미국 정부는 카지노 칩을 일상에서 사용하도록 법까지 만든 것일까. 스테이블코인 확대는 미 국채 수요를 늘려, 달러 가격을 안정시킬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현재 2,500억 달러 규모인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5년 내 3조7,0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 미국 정부가 달러 가치 안정, 더 나아가 달러 패권 확대를 위해 민간 기업의 카지노 칩 발행을 법으로 인정한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예를 들어 아마존이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을 전 세계 직구족이 사용하다 사실상 대용 화폐로 자리 잡는다면, 유학 중인 자녀에게 정기적으로 달러를 보내야 하는 부유층은 물론 극단적 예로 불법 자금을 국내에 숨겨 놓고 해외로 도주한 범죄자도 한국 통화당국 감시를 피해 아마존 코인으로 돈을 송금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미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은 각국 정부 통화 주권에 심각한 위협인 것은 분명하다. 유럽연합 중국 등은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CBDC)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은행도 ‘한강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CBDC를 준비했으나, 민간 스테이블코인에 우호적인 정부 입장에 주춤한 상태다. 기축통화도 아닌 원화 CBDC가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대항마가 될지도 회의적이다. ‘달러의 민영화’라는 대전환 앞에서 한국은 어떤 대비를 해야 할지 앞이 보이지 않는다.

<정영오 / 한국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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