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이컨·햄·핫도그·소시지·살라미·육포 등
▶ 매일 50g 분량 섭취시 당뇨·대장암 위험↑
▶ 육류 섭취 발암 걱정 줄이려면 채소와 함께
가공육, 가당 음료, 트랜스지방 등 초가공 식품이 제2형 당뇨병, 심혈관 질환, 대장암 위험을 높인다는 대규모 연구 결과가 나왔다. 특히 가공육은 매일 소량만 섭취해도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어‘안전 섭취량’이라는 개념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경고가 제기됐다.
■ 가공육의 위험성시애틀 워싱턴대학교 보건계량평가연구소(IHME) 연구진은 최근 70건 이상의 기존 연구 데이터를 종합 분석한 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 메디신(Nature Medicine)’에 발표했다. 연구는 가공육, 가당음료, 트랜스지방의 섭취량과 제2형 당뇨병, 심장질환, 대장암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핫도그 한 개 분량인 약 50g의 가공육을 매일 섭취할 경우 가공육을 전혀 섭취하지 않는 사람에 비해 제2형 당뇨병 위험이 11%, 대장암 위험이 7% 더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설탕이 들어간 탄산음료를 하루 한 캔 더 마실 경우 당뇨병 위험은 8%, 허혈성 심장질환 위험은 2% 증가했다. 트랜스지방의 경우 소량만 섭취해도 심장병 위험을 3% 높이는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진은 “이들 식품군은 세계보건기구(WHO), 연방질병통제예방센터(CDC) 등에서도 섭취를 줄이거나 피하라고 권고하고 있다”며 “건강을 위해 일상적으로 섭취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는 특히 ‘얼마나 먹으면 위험이 커지는가’를 다룬 용량-반응 관계를 정량적으로 분석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가공육은 맛을 더 좋게 하고 유통기한을 늘리기 위해 훈제·염장·발효·화학보존 등을 거친 고기로, 베이컨, 햄, 핫도그, 소시지, 살라미, 육포 등이 대표적이다.
기존에도 가공육은 암, 심혈관 질환, 치매 등과 연관된다는 연구가 다수 발표된 바 있다. 다만 이번 연구는 관찰연구를 기반으로 한 메타분석으로 인과관계를 직접 입증한 것은 아니다. 연구진은 “식이섭취량 조사 방법상 기억 오류 등 측정오차가 있을 수 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연구진은 “가끔 먹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매일 조금씩’ 습관적으로 먹는 것”이라며 “초가공식품 섭취를 최소화하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이외에도 가공육은 파킨슨병 발병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돼왔다. 초가공식품에 포함된 각종 인공 첨가물이 장내 유익균을 손상시키고, 이로 인해 장-뇌 축(gut-brain axis)을 따라 뇌에 염증성 신호가 전달되면서 파킨슨병 발병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파킨슨병은 도파민을 생성하는 신경세포가 점차 소실되며 발생하는 신경퇴행성 질환으로 손 떨림, 근육 경직, 보행 장애 등 다양한 운동 이상과 인지기능 저하 증상을 동반한다.
■ 육류의 발암 걱정 줄이려면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바비큐 요리에는 보이지 않는 위험이 숨어 있다. 고기를 고온에서 조리할 때 생성되는 독성물질인 ‘헤테로사이클릭 아민’(HCAs)이 대장암 등의 암 발생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소시지·햄·핫도그 등의 가공육을 1군 발암물질로 분류하면서 붉은색을 띠는 고기(적색육)도 발암 위험 물질(2A군)로 지정했다. 가공육만큼은 아니지만, 암 위험성에 대한 근거가 확인됐다는 의미다. 적색육에는 소, 돼지는 물론 양, 말, 염소 고기 등이 모두 포함된다.
그렇다면 발암 걱정에 중요 단백질 공급원인 고기를 포기해야만 할까. 다행히 해결책은 있다. 암 걱정을 줄일 수 있는 고기 섭취 방법을 시도하는 것이다. 최근 발표된 미국과 한국 공동 연구팀의 연구 결과는 그 해답을 채소에서 찾았다.
국제 학술지 ‘푸드 리서치 인터내셔널’ 최신호에 따르면 미네소타대 식품과학영양학과, 조선대 식품영양학과 공동 연구팀은 고기를 먹을 때 특정 채소를 함께 섭취하는 것이 우리 몸의 대사 작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밝히기 위해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팀은 총 25명의 참가자에게 고온에서 바싹 익혀 대장암 유발 물질(PhIP)이 많아진 햄버거를 기본으로, 십자화과 채소(배추, 브로콜리, 양배추 등) 또는 미나리과 채소(셀러리, 파스닙 등)를 단독 혹은 병용 섭취하게 한 후 소변 내 대사물질 660종의 변화를 정밀 분석했다. 이 결과 십자화과 채소가 포함된 식사(십자화과 채소 단독 또는 십자화과+미나리과 채소 혼합)는 우리 몸속의 ‘해독 대사 물질’을 가장 활발하게 변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에서는 십자화과 채소 단독 섭취그룹에서 90개(36개 증가, 54개 감소), 혼합 섭취그룹에서 133개(51개 증가, 82개 감소)의 대사산물 변화가 확인됐다. 특히 십자화과 채소 특유의 생리 활성물질로 몸에 좋은 설포라판 관련 화합물, S-메틸시스테인 등이 유의미하게 증가했다. 이는 십자화과 채소가 고기를 굽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발암물질을 해독하고, 몸 밖으로 배출하는 과정을 돕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미나리과 채소는 단독으로 섭취했을 때는 35개 대사산물에서만 변화를 보여 십자화과 채소만큼의 영향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혼합 섭취 때는 총 대사 산물의 변화에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으로 평가됐다. 연구팀은 이에 대해 십자화과 채소는 발암물질의 해독을 촉진하고, 미나리과 채소는 발암 독성 생성을 억제하는 상호보완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각 채소군을 함께 섭취하면 발암물질 활성화 효소와 해독 효소에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함으로써 발암물질 해독에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고기를 먹을 때 채소의 이런 효과는 연방 환경보호국(EPA) 연구팀이 2013년 국제학술지 ‘플로스원’에 발표한 임상시험에서도 확인된다. 연구팀은 대장암과 구운 고기 섭취의 상관성을 보기 위해 16명의 지원자에게 총 4주 동안 섭씨 100도의 온도에서 덜 익힌 고기(레어·미디엄·미디엄웰던)와 250도의 온도에서 바싹 익힌 고기(웰던)를 각기 먹도록 했다. 그런 다음 매주 각 지원자의 소변과 혈액을 채취하고, 직장 검사를 했다.
이 결과 고온에서 바싹 익힌 고기를 섭취한 그룹에서 돌연변이율이 더 높아지는 것은 물론 암을 촉진하는 물질의 농도도 치솟았다. 하지만, 고기를 먹을 때 상추와 양배추 등의 십자화과 채소를 함께 섭취하자 돌연변이 위험은 크게 감소한 것으로 분석됐다.
발암 연구 권위자인 서울대 약대 서영준 교수는 “이번 연구는 채소가 발암물질의 해독 과정을 강화하고, 잠재적으로 유전자 발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대장암 예방에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인의 식단에는 이미 쌈 채소 문화가 잘 발달해 있는 만큼 고기를 먹을 때 특정 채소군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면 고기 속 발암물질을 무력화할 수 있다”며 “앞으로는 단순히 입맛에 따라 채소를 고르기보다, 고기의 조리 방식이나 섭취 빈도에 따라 기능성 채소를 조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