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자신의 정책·정치 물심 양면으로 밀어줄 ‘원군’ 상실
▶ 트럼프의 ‘보복’ 직면한 머스크, 정부 계약 취소 등 사업 위기
▶ 서로 부담 주던 ‘잘못된 만남’, 관계정리로 홀가분해진 측면도

3월11일 트럼프 대통령과 머스크가 백악관 남쪽 잔디밭에서 함께 테슬라 차량에 탑승한 모습.[로이터]
정략결혼한 커플을 연상시키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관계가 트럼프 대통령의 감세 법안을 둘러싼 갈등 속에 '파국' 수순을 밟게 되면서 세계 정치와 자본 권력의 정점에 선 두 사람의 미래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작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정권의 DEI(Diversity, Equity, Inclusion:다양성, 형평성, 포용성)를 포함한 진보주의 정책에 대한 공동의 반감을 바탕으로 두 사람은 손을 잡았고,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승리와, 대선 이후 한동안 이어진 테슬라 주가 상승 등을 통해 두 사람은 '윈윈'하는 듯 싶었다.
그러나 지난달 30일, 머스크의 정부효율부(DOGE) 업무 종결에 즈음해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골든키'(황금 열쇠)를 선물하면서 서로 모양 좋게 작별하는 듯했던 두 사람은 그로부터 불과 6일만에 원색적인 비난을 주고 받으며 충돌했다.
다시 극적으로 관계를 회복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두 사람의 강력한 '자아'(ego)를 감안할 때 서로 '루비콘강'을 건넜다는 분석이 고개를 들고 있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 최고의 갑부를 자신의 후원자 명단에서 지워야 할 상황이 됐다.
머스크는 작년 11월 대선에서 트럼프 지원을 위해 공식적으로 1억3천만 달러(약 1천780억원), 비공식적인 지출까지 포함하면 약 2억7천만달러(약 3천700억원)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엑스(X·옛 트위터)의 소유주로서 2억2천만 명 이상의 팔로워를 보유한 머스크는 본인과 자신이 보유한 엑스의 온라인 영향력을 십분 활용해 트럼프 대통령을 지원했다.
두 사람의 관계가 파탄나지 않았다면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향후 국정 동력을 좌우할 내년 11월 중간선거(연방 의원, 주지사 등 선출)에서 머스크의 재력과 영향력을 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인해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격전지에 출마할 공화당 후보를 지원할 강력한 원군을 잃게 된 것이다.
머스크는 내년 11월 중간선거 뿐 아니라 당장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할 각종 정책에서 강력한 후원자 역할도 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향후 트럼프 대통령이 감내해야 할 손실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자신의 대선 공약인 팁과 초과 근무 수당에 대한 비과세 등 대규모 감세안을 담아 추진 중인 소위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을 둘러싼 여론전에서도 엄청난 불이익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앞으로 머스크가 반(反)트럼프 여론몰이에 나설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받을 정치적 타격은 더 커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트럼프의 선거 구호)로 불리는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은 크게 동요하지 않겠지만 그들보다 충성도가 덜한 지지자들의 민심에는 머스크와의 갈등이 악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대선 이후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이는 민주당에게 '머스크의 변신'은 애초에 기대할 수 없었던 정치적 횡재로 작용할 수 있다.
아울러 머스크가 미 항공우주국(NASA)과의 협력 등 정부와의 협업에서 철수할 경우 가뜩이나 NASA 예산 대폭 삭감을 추진 중인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우주사업이나 골든돔(우주기반의 미 본토 미사일방어 체계 구축사업) 등 안보 프로젝트에서 '대체재'를 찾는 일이 간단치 않을 수 있다.
머스크는 사업과 관련한 트럼프 대통령의 '혜택'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 것을 넘어 '보복'을 우려하게 됐다.
당장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SNS 트루스소셜에 "우리 예산에서 수십억달러(수조원)를 아끼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일론의 정부 보조금과 계약을 끊는 것이다. 난 바이든(전 미국 대통령)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게 늘 놀라웠다"고 밝혔다.
NASA와 협력 관계인 스페이스엑스를 포함한 머스크의 사업체가 정부와 맺은 보조금과 협력 계약이 취소될 경우 머스크는 상당한 금전적 타격이 불가피할 수 있다.
트럼프와의 관계 파국이 머스크 사업에 미칠 영향에 대한 투자자들의 우려 속에 이날 뉴욕증시에서 테슬라 주가가 전날보다 14.26% 급락한 284.70달러(38만6천309원)에 거래를 마친 게 단적인 예다.
앞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보복이 본격화할 경우 머스크가 부담해야 할 사업상 불이익은 훨씬 더 커질 수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과 머스크의 관계가 이미 서로에게 큰 부담을 주는 측면도 있었다는 점에서 양측이 '결별'로 손해만 보는 것은 아닐 수 있다는 평가도 가능해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머스크가 주도한 연방 정부 지출 감축과 조직 축소 등의 급진성과 과격함으로 인해 상당한 정치적 리스크를 감내해야 했다.
특히 민주당 지지층 사이에서는 정부의 실질적 2인자 취급을 받고 있는 머스크에 대한 비호감 여론은 결국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채'가 됐다.
따라서 이번에 머스크와의 관계를 단절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머스크 리스크'를 덜어낼 수 있게 됐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머스크 역시 대중의 호불호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트럼프와 '한 편'으로 간주되면서 자신이 진보 진영의 '공적'이 된 것은 작지 않은 부담이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불거진 테슬라 불매 움직임, 테슬라 매장에 대한 공격 등은 미국 역사상 가장 논쟁적인 정치인 중 한 명인 트럼프 대통령과 손잡은 데 따른 '역풍'이었던 측면을 무시할 수 없어 보인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과 '손절'할 경우 머스크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비호감 여론이 자신 사업의 발목을 잡는 상황은 일부나마 피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결론적으로 두 사람의 이반 관계 파탄이 양측에 어떤 손익계산서를 남기게 될지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