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산 2천불 넘으면 메디캘 혜택 제외”

2025-06-02 (월) 12:00:00 노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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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주, 자산심사 부활 추진
▶ 예산적자에 따른 고육책

▶ 저소득·장애인 건강보험 수백만명 혜택 상실 우려

“자산 2천불 넘으면 메디캘 혜택 제외”

개빈 뉴섬 가주지사. [로이터]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저소득층 및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복지 프로그램인 ‘메디캘(Medi-Cal)’의 자산 심사 제도, 소위 ‘자산 테스트(asset test)’를 다시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LA타임스가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개빈 뉴섬 주지사가 최근 예산 수정안을 통해 밝힌 이번 정책은 주 예산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수백만 명의 주민이 복지 혜택에서 탈락할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자산 테스트는 한 명의 신청자가 보유한 총 자산이 2,000달러를 넘으면 메디캘 및 홈케어 프로그램 신청을 제한하는 제도다. 부부의 경우는 3,000달러로 상향된다. 여기에는 현금, 은행 예금, 두 번째 차량 등이 포함된다. 2024년 자산 테스트 제도는 폐지돼, 모든 소득 적격 신청자가 자산 규모에 관계없이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뉴섬 주지사는 이 제도의 부활을 통해 매년 최대 7억 9,100만 달러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LA타임스는 전했다.

뉴섬 주지사는 “이런 결정을 즐겁게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책임을 져야 한다”며 예산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어려운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주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메디캘 프로그램 비용은 2014~15년 회계연도 171억 달러에서, 2024~25년에는 376억 달러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주로 가입자 수의 급증, 약제비 및 관리 비용 상승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실제로 메디캘 가입자는 2019-20년 1,270만 명에서 2024-25년에는 1,500만 명으로 증가했다. 프로그램은 저소득층 성인과 가족, 노인, 장애인 등에게 무료 또는 저비용의 건강보험을 제공한다. 홈케어 서비스 역시 고령, 시각장애, 중증 장애를 가진 이들이 시설 입소 대신 자택에서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그러나 이번 자산 테스트 부활안이 통과되면 수많은 저소득 노인과 장애인이 복지에서 탈락하게 될 위기에 처한다. 캘리포니아 건강 옹호 단체들은 “이 정책이 노인과 장애인을 극심한 빈곤으로 내몬다”며 “결국 이들이 자산을 소진한 뒤애 다시 메디캘 자격을 얻게 되지만, 그 사이 건강이 악화돼 더 많은 비용이 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의료권익 단체 ‘캘리포니아 장애인 권리’(DRC)는 “2,000달러라는 한도는 현대의 생활비와 의료비를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주정부가 가장 취약한 이들의 삶을 희생시키려 한다”고 비판했다. LA의 법률지원단체 ‘벳 체덱’의 변호사 킴 셀폰은 “2,000달러는 안전망이 아니라 빈곤의 늪”이라고 말했다.

이번 정책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되는 계층은 메디캘 가입자 중 노인 및 장애인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은 전체 가입자 중 10%에 불과하지만, 1인당 연간 복지 비용은 평균 1만5,000달러로 다른 집단(평균 8,000달러)의 거의 두 배다.

그러나 복지 수혜자의 인생을 뒤흔드는 이번 자산 심사 부활은 이미 메디캘 폐지를 위해 수년간 싸워온 활동가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중증 장애를 가진 신드 소토는 최근 8,000달러 가량의 유산을 상속받았다. 이 돈은 일상 생활에 큰 도움이 되었지만, 정책이 통과될 경우 오히려 메디캘 자격을 상실하게 된다. 소토는 “정말 두렵다”며 “나는 평생 돌봄이 필요하지만, 이제 그 권리가 박탈될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캘리포니아는 여전히 전체 메디캘 가입자의 4분의 3이 가족과 19~64세의 성인(오바마케어 대상자)으로 구성돼 있어, 상대적으로 노인 가입자 비중은 낮다. 그러나 ‘메디캘’ 예산의 상당 부분이 고령·장애인 가입자에게 집중되는 만큼, 예산 압박이 반복되고 있다.

이번 정책은 2026년 1월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건강권 옹호단체들은주의회에 재고를 촉구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노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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