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中과 휴전 국면 속 EU 향해 50% 관세 위협하며 양보 압박
▶ 학습효과 얻은 EU는 ‘항전 태세’…글로벌 경제 충격 우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돌연 유럽연합(EU)에 5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한 것은 '무역 전쟁'의 과녁을 중국에서 유럽으로 전환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중국과 관세 전쟁이 일단 90일간의 휴전 국면에 들어간 틈을 타 유럽과의 지지부진한 협상에서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상대를 궁지로 몰아가는 특유의 '벼랑 끝 전술' 구사에 나섰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협에 굴복하지 않은 중국의 사례에서 유럽이 '학습 효과'를 얻은 상황에서 협상에 탄력을 붙이기보다는 세계적인 경제 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24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EU와의 무역 전쟁을 재점화하는 위험한 도박에 나섰다"며 "글로벌 무역 전쟁의 새로운 전선을 열어 유럽의 양보를 얻어내려는 계산"이라고 분석했다.
FT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위협의 배경에는 'EU가 협상에 진지하게 임하지 않고 있다'는 실망감이 깔렸다고 해설했다.
EU가 예전과 같은 요구조건을 거듭 주장하며 시간을 끌어 사실상 협상을 방해한다고 보는데다, 협상이 결렬됐을 때 유럽이 볼 피해가 미국보다 더 크다고 판단하기에 압박을 강화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백악관에서 근무했던 켈리 앤 쇼는 "미국의 역대 어느 행정부도 일반적인 외교 방법론이나 전통적인 접근으로는 EU와의 무역 협정에서 결과를 끌어내지 못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접근법을 취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무역정책 전문가 빌 라인시는 "유럽이 '이번에는 다르다'는 점과 '이번은 전통적인 협상이 아니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미국의 관점"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유럽도 호락호락하게 무릎을 꿇지는 않을 모양새다.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하는 양보가 정당한 수준을 넘어섰고, 일부는 협상에서 다룰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다는 것이 EU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라고 FT는 전했다.
일례로 EU와 미국이 서로 부과하는 관세율의 차이는 1%포인트에 불과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문제 삼는 EU의 부가가치세는 미국의 판매세와 사실상 동일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나라에는 허용되지 않는 시장 접근권을 미국에만 독점적으로 줄 것을 요구하거나, EU 집행위원회가 아니라 각 회원국 차원의 조치를 무역 장벽이라며 문제 삼는 경우도 있다는게 미국 측에 EU 당국자들이 반발하는 지점이라고 한다.
뉴욕타임스(NYT)는 "압박하면 빠른 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는 관념 자체가 서로 다른 27개 회원국의 합의 도출이 필요한 EU의 구조에 대한 몰이해를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때 145%까지 끌어올린 대(對)중국 관세를 30%까지 되돌린 일도 유럽의 '항전 결의'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싱크탱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모리스 옵스펠트 선임연구원은 "우리는 이미 그가 중국에 양보하는 모습을 봤다"며 '강하게 반격하면 시장이 불안해지고, 그러면 (트럼프) 대통령은 물러난다'는 메시지가 유럽에 전해졌다고 진단했다.
벨기에 브뤼셀의 싱크탱크 유럽정책센터(EPC) 게오르그 리에켈레스 부소장은 "EU의 협상가들은 침착해야 한다"며 "유럽이 맞서 싸울 준비가 돼 있다면, 미국의 괴롭힘은 궁극적으로 자해적이기 때문에 다시 협상 테이블로 돌아올 수 있다"고 조언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EU에 실제로 50%의 고율 관세를 부과할 경우 양측은 물론 전 세계 경제에 심각한 충격이 예상된다.
NYT는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전망을 인용, 독일의 국내총생산(GDP)이 1.5%, 이탈리아는 1.2%, 프랑스는 0.75%씩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미국과 무역이 가장 활발한 아일랜드의 경우 GDP 규모가 4%까지 감소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키엘세계경제연구소의 율리안 힌츠 연구원은 미국의 경제 성장률도 1.5% 가량 둔화할 것으로 예측했다.
ING의 수석 유로존 이코노미스트인 카스텐 브르제스키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위협이 현실화한다면 미국에는 물가 상승과 성장 둔화가 동시에 나타나는 위험한 상황이 도래할 수 있고, 유럽 역시 경기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아울러 글로벌 경제 성장도 둔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닐 시어링은 관세의 인상 규모, 변덕스러운 위협의 방식, 확대되는 미국의 재정적자 규모 등이 금융시장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며 "이는 미국 정책 방향의 신뢰 부족을 보여준다. 안전장치가 사라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