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러·우 직접 협상해야”
▶ 중재 역할서 한 걸음 후퇴
▶ 푸틴 “전쟁 근본 원인 제거”
▶ 멀어지는 ‘30일 휴전’ 가능성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9일 약 두 시간에 걸쳐 통화했지만, 교착상태에 빠진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의 돌파구를 열기엔 부족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휴전에 소극적인 러시아를 압박하기보단 근거 없는 낙관론만 설파했고, 푸틴 대통령은 양보 없이 전쟁의 책임이 우크라이나와 서방에 있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푸틴 대통령과의 통화가 “대화의 톤과 정신이 훌륭했다”며 “매우 잘 됐다고 믿는다”고 자찬했다. 또 종전 이후 러시아와의 대규모 무역, 우크라이나의 재건 등 장밋빛 미래까지 거론했다. 그러나 정작 통화 내용에 대해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휴전과, 더 중요한 전쟁 종식을 향한 협상을 즉시 시작할 것”이라거나 “그것을 위한 조건들은 두 나라 사이에서 협상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언급하는 데 그쳤다.
지난 16일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열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직접 협상이 2천명 포로 교환이라는 제한적 결과만 내놓고 끝난 상황에서, 대화가 더 진척될 것이라는 신호는 드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양자 간 직접 대화를 강조하고 바티칸이 협상 개최에 관심이 있다고 소개한 대목에서는 중재자인 미국이 한 걸음 빼는 느낌까지 자아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을 압박해 3년 2개월 만의 전쟁 당사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직접 얼굴을 맞댄 이스탄불 회담을 성사시켰던 것처럼 재차 힘을 발휘해 주길 바라던 우크라이나와 서방의 기대에는 한참 미치지 못해 보인다.
푸틴 대통령이 통화 후 기자들과 만나 “중요한 것은 위기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말한 데서도 이날 대화가 러시아의 태도 변화를 끌어내지 못했음이 드러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추진 등으로 서방이 자국의 세력권을 위협한 것이 전쟁의 근본 원인이라고 한결같이 주장해 왔다.
같은 맥락에서 우크라이나와 서방이 주장하는 30일간 휴전안은 전쟁으로 이어진 원인을 내버려 둔 채 우크라이나의 재정비 시간만 벌어준다는 것을 러시아는 서방이 압박하는 휴전을 거부하는 논리로 내세워 왔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 직후 우크라이나에 평화 협정의 윤곽을 그리는 각서를 제안하기로 트럼프 대통령과 합의했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는 점에서 이를 ‘진전’이라고 평가하긴 섣불러 보인다. 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 각서에 대해 “양측이 초안을 만들어 교환한 뒤 복잡한 협상을 진행할 것”이라며 “기한은 없다. 모두가 빨리 하길 바라겠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는 법”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와 서방으로서는 시간을 끌기 위한 러시아 특유의 기만전술에 불과하다는 의심을 거두기 어려워 보이는 지점이다. 두 정상이 서로 ‘블라디미르’, ‘도널드’ 등으로 칭했다고 크렘린궁이 소개한 대목에서는 이날 통화가 러시아에 유리한 방향으로 흘렀다는 자신감도 감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