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첫 대통령 전용기는 수상 비행기였다.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에 처음 등장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이 비행기를 타고 모로코의 카사블랑카로 날아갔다. 연합국 지도자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이 회동에 영국 수상 처칠은 참석했으나 전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바람에 오기로 했던 소련의 스탈린은 참석하지 못했다. 보잉 사 제품인 ‘딕시 클리퍼’가 대통령 전용기로 사용된 것은 전시에 대통령 안전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전후 공군 소유의 비행기 ‘DC-6’를 거쳐, 아이젠하워 때는 록히드 사가 제작한 상용 비행기 2대를 개조해 대통령 전용기로 운용했다. 제트 비행기 시대가 열린 것은 존 F 케네디 대통령 때. 보잉 707이 전용기가 됐다. 밝은 톤의 블루와 흰 색으로 이뤄진 전용기 외관 디자인은 이 때 만들어졌다. 대통령 부인 재클린 케네디가 유명 산업 디자이너의 도움을 받아 확정했다고 역사는 전한다. 이 전용기는 1980년 대까지 8명의 대통령이 이용했다. 보잉 747기 2대로 대체된 것은 1990년대 들어서였다.
대통령 전용기는 처음에는 ‘나는 백악관’으로 불렸다. ‘공군 1호기’라는 별칭을 갖게 된 것은 아이젠하워 대통령 때였다. 전용기 조종사가 활주로에 접근하면서 다른 비행기들과 구별하기 위해 콜 사인으로 ‘공군 1호기(Air Force One)’란 말을 처음 사용했다. 이 콜 사인이 알려지면서 지금은 대통령 전용기를 가리키는 말이 됐다.
대통령 전용기는 한 두 대가 아니다. 예컨대 존슨 대통령이 텍사스의 목장에 갈 때 등 대통령들이 사용하던 작은 전용기들이 있다. 존슨 대통령은 농담삼아 이런 비행기들을 ‘반쪽 공군 1호기(Air Force One Half)’로 부르기도 했다.
대통령 전용기는 권위와 파워의 상징이다. 역사적 공간이기도 하다. 1963년 존슨 대통령은 전용기 안에서 대통령에 취임했다. 같은 비행기에 암살당한 케네디 대통령의 시신이 실려 있었다. 취임 선서를 하는 존슨 대통령 옆에 침통한 얼굴로 서 있는 재키 케네디의 모습이 기록물로 전해져 오고 있다.
닉슨 대통령 때 공군 1호기는 중국, 구 소련 지도자들과의 정상회담을 연결하는 역사적인 외교 임무를 수행했다. 하지만 이 비행기는 사임한 닉슨 대통령 일가를 메릴랜드의 앤드류스 공군 기지에서 캘리포니아로 실어 나르는 임무도 담당했다. 캘리포니아에 도착했을 때 전용기의 콜 사인은 ‘에어 포스 원’에서 ‘샘 27000’으로 바뀌어 있었다. 대통령이 타고 있지 않은 비행기였기 때문이다.
닉슨은 전용기에 만족하지 못했던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다. 속도에 불만이었다. 초음속 전용기를 원했다. 실제로 마하 속도로 개발 중이던 270석 규모의 상용 비행기를 전용기로 바꾸는 안이 추진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이 초음속 여객기 개발에서 프랑스, 영국, 구 소련 등에 뒤질 것을 우려했고, ‘느림보 전용기’는 국격 문제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또 한 사람, 트럼프도 전용기가 불만인 대통령이다. 그는 아랍 정상들이 더 크고, 호화로운 비행기를 쓰고 있다고 불평해 왔다. 전용기는 크기와 호사스러움 보다는 안전과 보안이 최우선. 하지만 갑부 대통령의 호사 취향은 유명하다.
트럼프는 다음 전용기로 카타르가 선물한 4억달러 상당의 보잉 747-8을 개조해 쓸 계획이다. 미 역사상 대통령이 받은 최고가 선물로 알려진 이 비행기를 전용기로 쓰려면 비행기 값보다 2배 가까운 돈을 들여 첨단 장비 등을 갖춰야 하리라고 한다. 임기 중에 사용하다 바로 퇴임 후 지어질 대통령 기념관에 넘길 예정이라고 하는데, 글쎄, 얼마나 쓰겠다고 그 예산을 들여야 하는 건지 비판 여론이 높다. 하지만 ‘나는 궁전’에 대한 대통령의 집착은 꺾이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