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트럼프의 ‘시민권’ 집착… “물고 늘어질수록 지지율 올랐다”

2025-05-15 (목) 09: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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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바마·크루즈·헤일리 상대 ‘시민권 없다’ 거짓 주장하며 정치적 존재감

▶ 대법 ‘출생시민권 불인정’ 행정명령 일부 지역 허용 여부 심리…결과 주목

부동산 개발업자 출신의 리얼리티TV 쇼 진행자였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 통수권자의 지위에 오르기까지 다년간 '시민권 문제'에 집착해 왔다.

15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트럼프는 2011년부터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에게 미국 시민권이 없다'는 취지의 거짓 의혹을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당시 트럼프는 ABC·NBC 등 전국방송에 출연해 "(오바마 대통령이) 왜 출생증명서를 보여주지 않느냐", "(오바마 대통령이) 여기(미국)서 태어난 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등 발언을 했다.


트럼프가 오바마 대통령의 시민권에 대해 거짓 의혹을 제기하면 할수록, 2012년 대통령선거 공화당 대권주자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트럼프의 지지율은 높아졌다는 게 NYT의 설명이다.

대통령선거 직전 해인 2011년 4월에는 퍼블릭폴리시폴링, 갤럽, 라스무센 리포츠 등 3차례 전국 여론조사에서 연거푸 1위를 차지한 적도 있다.

트럼프는 2016년과 2024년 공화당 대통령후보 경선 과정에서는 경쟁자들이던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과 니키 헤일리 전 유엔주재 미국 대사가 '출생 시민권'이 없으므로 대통령 출마 자격이 없다는 허위 주장을 펴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밖에도 잠룡 시절, 후보 시절, 현직 대통령 시절, 전직 대통령 시절을 가리지 않고 정치적으로 난관을 맞을 때마다 '미국 시민의 조건은 무엇인가'하는 문제를 제기해 지지자들의 분노와 열정을 불러일으켰다.

자녀가 '출생 시민권'을 얻도록 하려고 불법 이민자들이 무더기로 미국으로 몰려들어서 지역사회의 자원을 고갈시키고 "진짜 미국인들"의 삶을 힘들게 한다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5일 소셜 미디어에서 "출생 시민권은 휴가 온 사람들이 영구적으로 미국 시민이 돼서 가족들을 데려오면서 우리(미국인들)를 '호구'라고 비웃으라고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버드대에서 헌법학을 가르치는 로런스 트라이브 교수는 트럼프의 수법이 "'타자화', 즉 우리가 하나의 국민이 아니라고 암시하는 것"이라며 "그는 누군가를 '우리 아닌 편'으로 몰아붙일 방법을 찾을 수만 있으면 언제나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트럼프는 120여년간 확립된 판례로 폭넓게 인정돼 온 '출생 시민권'을 대폭 축소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1868년부터 시행 중인 미국 수정헌법 제14조는 "미합중국에서 태어나거나 귀화하여 그 관할권에 속하는 모든 사람은 미합중국과 그가 거주하는 주의 시민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그 관할권에 속하는'이라는 문구는 '미국 내에서 면책특권을 누리는 외교관이 미국에서 자녀를 낳은 경우 등 매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미국에 살면서 미국 법을 따라야 하는 거의 모든 경우'에 적용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미국에서 태어난 거의 모든 사람에게 '출생 시민권'을 인정하는 이런 해석은 1898년 연방대법원의 '웡킴악'(Wong Kim Ark) 사건 판례로 확립돼 120여년간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2기 취임 당일인 1월 20일 서명한 행정명령에서 '미국에서 태어났더라도 부모가 미국에 불법으로 체류중이었거나 영주권이 없는 외국인이었던 경우에는 출생시민권을 인정하지 말라'는 취지의 지시를 행정부에 내렸다.

이에 대해 여러 건의 위헌 소송이 제기된 것을 계기로 일부 연방법원이 이 행정명령의 효력을 전국에 걸쳐 일시중단시키는 가처분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이 행정명령이 현재 시행되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이런 가처분 결정들이 전국에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부당하며 이런 결정을 받은 개인이나 주에만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대법원에 추가로 소송을 냈다.

이에 따라 미국 연방대법원은 15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해온 '출생시민권 인정 금지' 정책의 위헌 여부에 대한 법정 다툼이 진행되는 동안 적어도 일부 지역에서 정책 시행을 허용할지를 두고 심리를 개시했다.

대법원 심리의 쟁점은 대법원이 아닌 연방지방법원이나 연방항소법원이 출생시민권 금지 정책의 시행을 미국 전역에서 일시중단시킬 권한이 있느냐의 여부였다.

만약 트럼프 행정부의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면, 출생시민권 인정 요건에 관한 확립된 판례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행정부가 출생시민권 불인정 정책을 즉시 시행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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