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뉴스의 현장] 이제는 우리가 답할 차례

2025-04-29 (화) 12:00:00 황의경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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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립이 일상이고, 이익이 정의인 시대다. 정치권은 정파의 유불리에 따라 목소리를 바꾸고, 기업은 도덕보다 이윤을 우선시한다. 종교조차도 믿음의 본질보다 세 확장에만 몰두하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은 하나의 물음을 던진다. “우리는 정말 양심에 따라 살고 있는가.”

지난 21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했다. 바로 전날인 부활절 아침, 오랜 병환에도 불구하고 그는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의 발코니에 휠체어를 타고 모습을 드러내 성도들에게 마지막 부활절 축복을 전했다. 이제와 돌아보면 그 장면은 자신의 사명을 끝까지 완수하려 했던 그의 생애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가난과 약자, 평화와 생명을 위해 일생을 헌신해온 이 거대한 영적 지도자의 부재는 단지 한 시대의 마침표가 아니라, 우리가 외면해온 시대적 과제를 다시 마주하게 만드는 깊은 물음으로 남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의 수장이었을 뿐만 아니라, 비정상의 시대 속에서 정상의 가치를 회복하고자 했던 지도자였다. 그는 호화로운 교황궁 대신 바티칸 내 사제숙소에서 지냈고, 화려한 의복 대신 소박한 흰색 수단을 고수했다. 겉모습뿐 아니라 행동도 달랐다. 발을 씻기는 의식에서 노숙인과 여성, 심지어 무슬림의 발을 씻기며 권위 대신 섬김의 자세를 보였다. 바티칸의 사치에 경고를 보내며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를 강조했던 그다.

그가 세상의 관심을 모았던 이유는 단지 파격적인 행보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의 메시지는 언제나 분명했다. 갈라진 세상 속에서 다리를 놓고, 배제된 이들을 향해 손을 내밀며, 공포가 아닌 양심에 따라 행동하자는 그의 말은 시대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외침이었다. 그는 누구보다 교황의 자리를 가볍게 여기지 않았지만, 그 무게를 ‘권위’가 아닌 ‘책임’으로 받아들였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갈등은 일상이 되었고, 타인의 고통에는 점점 무감각해진다. 정치가 정쟁을 반복하는 사이 사회는 방향을 잃었고, 경제는 불평등을 심화시키며 인간보다 수치를 앞세운다. 미디어는 진실보다 자극을 쫓고, 전쟁은 더 이상 가상의 위협이 아니라, 매일 뉴스로 다가오는 현실이다. 이런 시대에 윤리와 양심은 뒷전으로 밀리고, 인간의 존엄조차 논쟁의 대상이 된다.

이 와중에 교황 프란치스코는 일관되게 양심을 이야기해왔다. 누구보다 명료하게, 때로는 가슴 아프게. “이 시대의 가장 위험한 병은 무관심”이라는 그의 말은 단지 종교인의 훈계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 던지는 경고였다. 그는 말뿐이 아니었다. 이민자들의 발을 씻기고, 권력 앞에 고개 숙이지 않았으며, 부유한 교회보다는 가난한 교회를 외쳤다. 그가 보여준 리더십은 권위주의가 아닌 겸손의 힘, 이념이 아닌 인간의 가치를 중심에 둔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점점 희미해졌다. 그가 강조한 평화는 군비 경쟁에 눌렸고, 약자를 향한 연대는 국경 앞에서 멈췄다. 이제 그조차 없는 세상이 됐다. 양심은 더더욱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이제 질문이 남는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라진 자리에 우리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단순한 추모의 형식이 아니라, 그의 삶과 메시지가 던진 질문을 다시 꺼내야 한다. 우리는 진정 양심을 품고 살고 있는가? 약자와 소수자를 향한 우리의 시선은 여전히 따뜻한가? 타인의 고통에 우리는 여전히 마음이 움직이는가?

교황의 선종은 하나의 마침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맞이한 물음표다. 이제는 각자의 방식으로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정치인은 정책으로, 언론인은 진실 보도로, 시민은 일상 속 작은 실천으로. 그렇게 우리 각자가 다시 양심을 중심에 놓는 삶을 살아야 할 때다. 이 혼탁한 시대, 어쩌면 교황의 부재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우리가 그 부재를 통해 비로소 양심의 무게를 다시 느끼게 됐다는 사실 아닐까.

<황의경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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