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화요 칼럼] 춤추는 붓 캘리그라피

2025-04-29 (화) 12:00:00 로라 김 서예가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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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글자 속에서 산다.

책도 신문도 모두 글자고 거리를 꽉 채운 빌딩의 상호들. 드라마나 영화의 멋진 제목들. 매일 쏟아져 나오는 책의 표지들도 모두가 글자다. 어디 그뿐이랴. 마켓에 가서 한번 빙 둘러보자. 거기서 만나는 수천수만 종류의 식료품과 생활용품의 로고들. 이들은 모두 글자로 이루어져있고 우리는 그 글자 속에서 살고있다.

상품과 어울리는 멋진 디자인의 글씨들을 보면 관심이 가고 꼭 필요하지 않은 것도 사게 되는 경우도 있다. 같은 종류의 수 많은 물건 중에서 무엇을 고를까 늘 고민한다. 대개의 경우 눈에 띄는 포장이 있으면 일단은 한번 손에 들고 본다. 저마다 특성을 잘 나타내어 더 튀고 더 뛰어나서 고객을 사로잡는 광고전략인 줄 뻔히 알면서도 멋진 포장에 눈도 손도 가는 건 사실이다. 이 그림 같이 이 과자는 맛이 있을까? 과대 광고였다며 실망하는 경우도 많긴 하지만...


로고는 브랜드의 얼굴이다. 로고는 반복적으로 노출되고 인지도를 높임으로 치열한 경쟁 속에서 그 브랜드를 살아남게 하는 힘이다. 고객에게 신뢰를 주고 친근하게 다가감으로 비지네스를 성공적으로 이끌수 있다. 브랜드의 얼굴인 로고의 99%는 글자로 이루어져있다. 글자 중심 로고는 가독성이 뛰어나고 단순하며 기억하기 좋고 고객과 빠른 소통이 가능하다.

이런 관심과 욕구를 채워주고 예술성을 담고 있으면서도 자유롭고 멋진 디자인 글씨의 필요성은 많은 이들의 창의성을 일깨우며 서예의 새로운 장르인 캘리그래피를 탄생하게 했다. 대한민국은 지금, 가르치고 배우며 캘리그래피의 꽃을 피우고 있는 캘리그래피 르네상스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캘리그래피는 그리스어로 글씨를 아름답게 쓴다는 뜻이고 서예를 영어로 얘기하면 캘리그래피이지만 한국의 캘리그래피는 완전히 한국에서 뿌리내리고 성장한 한국산 토종이다. 예술적이고 개성적이고 창의적인 표현으로 단순히 글씨 쓰기의 기술을 넘어 그에 담긴 내용과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는 하나의 예술적 수단이 되고 있다.

전통적이고 정통성을 중시하는 동양의 서예와 현대판 한국 캘리그래피는 몇가지 차이점이 있다. 우선 재료에 있어서, 정해진 규칙과 전통을 따르는 전통서예는 문방사우인 붓 먹 종이 벼루를 쓰는 반면 캘리그래피는 지필묵은 물론 자연물, 생활도구, 물감, 디지털 등 다양한 도구를 사용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예는 점, 선, 획의 정해진 서법에 따라 궁체와 판본체를 쓰지만 캘리그래피는 규칙의 틀을 벗어나 창의적이고 감각적인 표현을 추구한다는 데 큰 차이점이 있다.

일반적으로 서예는 어렵다고 한다. 붓을 바로 잡고 중봉으로 시작과 끝을 잘 맺고 기선을 잘 맞춰 고른 글씨를 써야한다는 전래의 가르침 때문이다. 붓도 자유롭게 잡고 선과 점의 크기도 굵기도 속도도 구성도 모두 나만의 온전한 붓놀이가 되는 캘리그래피. 꽉 짜인 틀에서 벗어나는 자유. 먹이 튀고 붓이 춤을 춘다.

마음껏 자유자재로 춤추듯 쓰는 글씨. 그동안 익혀왔던 서법에 새로운 옷을 입혀보면 어떨까? 새삼, 조선의 연암 박지원이 주장한 법고창신을 되뇌어 본다. 옛것을 본받아 새로움을 창조하는 정신이다.

붓이여, 먹의 바다에서 맘껏 춤추어라!

<로라 김 서예가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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