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혼자 보았던 영화 ‘소풍’

2025-04-28 (월) 12:00:00 전지은 수필가
크게 작게
한국의 긴 연휴 동안이었다. 뉴스에 따르면 말그대로 민족의 대이동. 무계획이 계획이었던 오롯히 혼자 맞는 명절. 혼자 할 수 있는 일. 문득 보고 싶었던 영화가 떠 올랐다. <<소풍>>

상영관을 검색하고 예매를 하기 위해 앱을 깔았다. 혼자가는 영화관. 기억도 되지 않을 만큼 까마득했다. 그래, 이럴 때 한번 가보는 거지, 하며 웃었다.

나문희, 김영옥, 박근형 주연의 영화. 예매 사이트엔 세사람이 환하게 웃는 포스터가 떴다. ‘16살의 추억을 다시 만났다’는 소제목을 달고. 경로우대 1장을 예매. 상영관에 도착하자 시간은 넉넉히 남았다. 키오스크에서 입장권 발매를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대부분 부부 같아 보이는 커플이거나 몇몇이 같이 온 중 노년 여성들이다. 나만 혼자? 싶었지만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때 옆자리에 앉는 또 한사람. 혼자 온 내 또래의 여자분이다. 맘 속으로 그렇게 반가울 수가.


천상병 시인의 “귀천”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이 기억되는, 영화 <<소풍>>은 시작되었다. 영화에서는 나태주 시인의 “하늘 창문”이 뜬다.

‘하늘 창문 열고 /여기 좀 보아요 /거기는 잘 있나요? /여기는 아직이에요/이제는 아프지말기에요.’ 이 영화를 위해 시인이 직접 지어 헌정했단다.

절친이며 사돈 지간인 은심(나문희)과 금순(김영옥), 그 옛날 은심을 짝사랑했던 태호(박근형)의 이야기이다. 나이가 들어 가며 만나는 이야기들. 뇌종양이 있었던 걸 숨겼던 태호는 죽고, 장례식이 끝나자 은심이 금순에게 소풍을 가자고 한다. 그러나 금방 떠나지 못한다. 파킨슨에, 허리 통증에, 삭신이 쑤신다고. 결국 그날은 떠나지 못하고 우선 시장에서 금순이 입을 꽃무늬 원피스를 사서 집으로 돌아온다. 며칠 후 둘의 건강 상태가 좀 호전되자 그 옛날 태호와 셋이 갔던 언덕을 향해 오른다. 김밥 도시락을 맨 은심. 허리가 많이 구부러진 금순 둘 다 나무 지팡이를 집고. 들꽃이 가득한 좁은 산길. 꽃 길의 풍경이 먼바다와 어우러지며 멋스럽고 아름답다. 산정의 정자에서 김밥을 나누어 먹으며 서로 ‘꼭꼭 씹어 먹어, 김치 쪼매 느올꺼 기랬다’ 등의 대화는 정겹다 못해 눈물 겹다. 혼자 흘쩍거리는데 옆에서도 마찬가지. 뒤쪽에서도 작은 울음 소리가 들렸다.

마지막 장면, 바다가 보이는 산언덕 벼랑에 둘이 손을 꼭 잡고 서 있다.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는 두 사람. 임영웅의 노래가 들리고 휘파람이 이어진다.

죽음을 암시하는 그 장면은 압권이었다. 그렇게 함께 손을 잡고 소풍을 마치는 두 사람. 영화가 끝났는데도 아무도 일어서지 않는다. 그만큼 여운이 길고 먹먹했던 때문이겠지. 세상 소풍을 끝내고 귀천하는 그날. 누구에게도 올 일이지만 나는 얼마나 준비가 된 걸까? 어두운 상영관을 빠져나오며 생각이 많아졌다. 그때, 엄마를 요양원에 모셨던 나는 살아 있어도 살아 있지 않았음을 배웠다. 존엄사에 대한 질문을 가슴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점심을 걸렀는데 배 고프지 않았고, 겨울 끝자락의 바람이 차지 않았다.

“내는 다시 태어나도 니 친구 할끼다” 한마디가 귓전을 맴돈다. 향긋한 차 한잔 만들어 음악의 볼륨을 올리며 어스름이 지는 저녁 바다를 내다봤다. 가슴은 먹먹하고 아렸다.

<전지은 수필가>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