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드니대 연구팀 1만여 명 조사 결과
▶ 일상 속 몸 움직임을 ‘빠르고 강렬하게’
▶ “심혈관 질환 발병·사망 위험 50% 감소”
운동을 좋아하지 않거나 단순히 시간이 없는 사람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있다. 일상적인 집안일이나 활동을 조금 더 빠르게 하면 건강과 수명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즉, 집안 청소를 하거나 계단을 오르거나 버스를 향해 달릴 때 약간의 변화를 주기만 해도 헬스장에 가지 않고도 운동의 이점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달 Circulation에 발표된 이 연구에서 연구진은 2만 명 이상의 성인을 대상으로 약 1주일간의 일상적인 움직임을 분석했다. 참가자 중 누구도 정식으로 운동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빠르게 움직였다. 예를 들어 에스컬레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거나, 거실을 청소기로 청소할 때 몸을 더 빨리 움직이는 식이다.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일상적인 활동의 양은 하루 5분도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작았지만 그 효과는 상당했다. 활기차게 움직인 사람들은 거의 매일 느릿느릿 움직인 사람들에 비해 향후 심장마비나 뇌졸중을 겪을 확률이 최대 절반 수준으로 낮았다.
연구를 이끈 시드니 대학교의 에마누엘 스타마타키스 교수는 “일상 속에서 몸을 쓰는 방법을 찾는 것이 좋은 생각이라는 점을 시사한다”며 “하지만 그렇다고 꼭 ‘운동’을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움직임 vs 운동에 대한 과학적 연구이번 연구는 운동 없이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한 연구 분야를 한층 더 발전시켰다. 최근 몇 년간 스타마타키스 교수와 동료 연구진은 방대한 영국 바이오뱅크(UK Biobank)의 데이터를 활용해 이 문제를 연구해왔다.
영국 바이오뱅크는 수만 명의 영국 성인을 등록하여 건강 정보와 조직 샘플을 수집한 대형 프로젝트다. 이들 중 많은 참가자들은 1주일 동안 활동 추적기를 착용해 직장과 가정에서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를 세세하게 기록했다.
스타마타키스 교수 연구진은 과거 연구에서 이 활동 기록과 건강 및 사망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 결과 스스로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 답한 사람들 중에서도 버스를 향해 달리거나 계단을 빠르게 오르는 등 과학적으로 ‘격렬하다’고 표현되는 수준으로 자주 움직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심각한 질병에 덜 걸리고 더 오래 사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운동과 움직임에 대한 맥락에서 ‘격렬한’이나 ‘강도 높은’ 같은 단어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을 운동 과학자인 스타마타키스 교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최신 연구에서는 보다 부드럽고 일상적인 움직임조차도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를 확인하고자 했다.
■짧게 움직이는 것이 가장 큰 효과를 준다간단히 말해 신체 활동은 얼마나 강하게 몸을 움직이느냐에 따라 가벼운 강도, 중간 강도, 격렬한 강도로 나뉜다. 가벼운 강도의 활동은 숨이 차지 않아 대화나 노래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느껴진다. 중간 강도의 활동을 할 때는 약간 숨이 차지만 대화는 가능하고, 노래는 할 수 없다. 반면 활동 강도가 격렬해지면 말을 하기조차 힘들어지고, 노래는 불가능하다.
스타마타키스 교수와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위해 알고리즘 기반의 머신러닝을 활용해 10초 단위로 움직임 패턴을 정밀하게 분석했다. 이를 통해 참가자가 가볍게, 중간 정도로, 또는 격렬하게 움직였는지를 판별했다. 연구진은 운동을 정식으로 한 적이 없는 성인 2만4,139명의 바이오뱅크 활동 추적 데이터를 활용했고, 이들을 병원 기록 및 사망 데이터와 교차 확인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점심을 사러 잠깐 걷거나 복사기를 이용하러 가는 정도의 가벼운 일상 활동도 하루 종일 거의 앉아만 있는 사람들과 비교하면 향후 8년 동안 심혈관 질환과 사망 위험을 약간 줄여주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의미 있는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하루 2시간 이상의 가벼운 활동이 필요했다.
반면 중간 강도의 일상 활동은 훨씬 더 강력한 효과를 보였다. 하루에 단 24분만 중간 강도로 움직여도 심혈관 질환이 생기거나 그로 인해 사망할 위험이 최대 50%까지 줄어들었다. 그리고 가장 격렬한 활동을 할 때는 적은 시간으로도 효과가 나타났다. 숨을 헐떡이며 이리저리 걷거나 급히 움직이는 식의 격렬한 활동을 하루 5분 정도만 해도 심장 관련 사망 위험이 약 40%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와 정원일도 가능한 한 빠르게 하라실질적인 측면에서 보면 이번 연구의 핵심은 단순하다고 스타마타키스 교수는 말한다. 운동을 자주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특히 “집안일이나 일상 활동의 강도를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스타마타키스 교수는 “계단을 오르는 건 대부분의 사람에게 중간 강도의 활동이 되는데, 급하게 오르면 격렬한 활동이 된다. 걸을 때도 팔을 흔들며 속도를 높여보라. 우리는 이것을 ‘스프린트 걷기’라고 부르며, 중간 강도 활동에 해당한다. 아니면 가능한 한 빠르게 정원 일을 하라. 어차피 해야 하는 일에 약간의 힘을 더하는 기회는 충분히 있다”고 했다.
물론 이 연구에도 한계는 있다. 연구 참여자 대부분이 백인에 교육 수준이 높은 영국인이었다. 또 집안일을 천천히 하는 사람들의 경우 이미 건강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도 있으며 이로 인해 심장질환 위험이 높아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연구진은 첫 해에 심장질환을 경험한 사람들을 제외하여 이 가능성을 줄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 연구 결과가 운동을 하지 말라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스타마타키스 교수는 “둘 다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건강과 상황이 허락하는 한 운동도 하고, 일상 속에서 때때로 스스로를 밀어붙이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운동 강도를 연구하는 캐나다 맥마스터 대학교의 운동 과학자 마틴 기발라 교수는 “연구 방법도, 전달하려는 메시지도 꽤 괜찮다”고 평가했다. 그는 “운동을 선택하지 않더라도 일상에 중간 또는 격렬한 움직임을 조금만 섞어도 건강에 의미 있는 효과를 줄 수 있다는 결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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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tchen Reynol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