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화요 칼럼] 성벽을 허는 여우

2025-03-11 (화) 12:00:00 박영실 시인ㆍ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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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는 유럽과 아시아의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오묘한 나라다. 지난 몇 년 동안 중동 지역과 튀르키예에 거주하는 디아스포라 난민들을 몇 차례 섬기고 왔다. 튀르키예는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지리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이다. 찬란했던 역사와 문명의 흔적을 담고 있는 주변의 건축물들과 풍경에 시선이 흘러갔다. 지중해의 풍경들 너머 유럽과 소아시아 역사에 남겨진 상흔이 파노라마 같이 지나가는 듯했다. 마음이 머무는 여러 풍경을 뒤로하고 이스탄불 군사박물관을 방문했다. 군사박물관을 마주했을 때 마치 눈앞에서 전쟁을 목도 하는 듯했다. 바로 옆에서 대포 소리와 총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1,453년은 튀르키예 역사에서 중요한 해다.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현재의 이스탄불)을 정복함으로써 비잔틴 제국이 함락되었다. 오스만 제국은 이 도시를 수도로 삼고,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로를 장악했다.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함으로써 역사적인 전환점을 맞이했다. 이것은 기독교와 이슬람의 판도가 바뀌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1,453년의 사건은 유럽의 정치적 지형에도 지각변동을 가져왔으며, 오스만 제국의 확장과 유럽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전환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콘스탄티노플의 성벽은 두 겹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강력한 방어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오스만군은 지속적인 공격을 통해 성벽 일부를 무너뜨렸다. 무엇보다 내부 배신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도시 내부에서는 비잔틴 제국의 방어가 약화 되는 상황에서 일부 내부 배신자들이 오스만 제국에 협력했다. 콘스탄티노플 함락의 원인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작은 일에 원인이 있었다는 사실에 잔잔한 파문이 일었다. 결정적 전투는 1,453년 5월 29일이었다. 오스만군은 성벽을 넘어 도시 내부로 진입하였고, 치열한 전투 끝에 난공불락 같았던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하게 되었다.


이스탄불 군사박물관을 방문하고 만감이 교차했다. 튀르키예 방문 중 이스탄불 군사박물관에서의 교훈은 그곳에서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던 포격 소리만큼 큰 울림으로 남았다. 외부의 어떤 공격에도 쉽게 노출되지 않도록 우리 내면의 성벽을 강화하면 어떨까. 내면에 해결되지 않은 상흔을 통해 작은 여우는 언제들이 들어올 수 있다. 정원 안에 무성하게 자라는 잡초와 엉겅퀴, 쓴 뿌리를 제거하고 향기 가득한 정원이 되면 어떨까.

인류 역사는 시대마다 다양한 변곡점을 지나며 방향이 전환되었다. 개인이나 공동체, 어떤 민족의 역사를 보아도 큰일에서 실패하거나 패망하지 않았다. 작은 실수, 그냥 간과하고 스쳐 지나간 사소한 일에서 시작된 일들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왔다. 역사는 누가 어떤 각도에서 평가하느냐에 따라 역사를 기록하고 보는 관점이 달라진다. 표면화되지 않은 현상 이면에 우리가 알 수 없는 수많은 사건이 있었으리라.

<박영실 시인ㆍ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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