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간 미국의 외교정책은 팽이처럼 어지럽게 돌아갔다. 캐나다와 멕시코에 고율관세를 부과한다는 극적인 선언에 이어 곧바로 유예 발표가 나왔다. 미국 국제개발처(USAID)는 갑작스런 해체 조치에 빈껍데기만 남았다. 이 정도로는 모자란 듯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가자 지구 접수 구상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의 속내를 제대로 들여다보려면 트럼프의 공식적인 발표보다 그의 보좌관들과 지지자들의 발언에 주목해야 한다. 관세 발작은 외국 지도자들이 트럼프를 다루는데 능숙해졌음을 시사한다. 그들은 트럼프의 승리 선언을 뒷받침해줄 상징적인 양보만으로 관세협박을 피해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실제로 멕시코와 캐나다는 이미 추진중이었던 알량한 정책을 ‘양보’로 포장해 제시함으로써 관세폭탄을 피했다. 바이든의 요청에 따라 수천여명의 병력을 국경지대에 배치하기로 합의했던 멕시코는 이와 동일한 조치를 취하면서 트럼프로부터 관세유예 판정을 받아냈다. 캐나다의 경우도 비슷한다. 트럼프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인 트루스 소셜을 통해 캐나다가 국경강화 조치를 ‘집행’하는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경강화 조치의 대부분은 지난 12월에 발표된 내용이다.)
일부 보수 논객들도 자명하기 그지없는 뻔한 사실을 앞다투어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가 먼저 눈을 깜빡였다”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폭스뉴스 앵커인 로라 잉그러햄은 대통령이 ‘거대한 반발’에 굴복했다며 캐나다의 양보는 “보잘 것 없다”고 꼬집었다. 캐나다 언론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CTV 뉴스는 “캐나다가 버티자 트럼프가 물러섰다”는 멘트로 방송을 시작했다. 캐나다의 풍자쇼인 ‘22 미니츠’에서 트럼프의 닳은 꼴인 한 남성 출연자는 “내가 불가능한 일을 해냈다. 캐나다와 화해했다!”며 익살을 떨었다. 그는 이어 “짐은 결코 지지 않았다. 무역전쟁 훈장은 완전히 나의 몫이다”고 적힌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당연히 J.D. 밴스 부통령에서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에 이르기까지 공화당 의원들은 대통령의 경이로운 협상력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존슨은 소셜미디어에 “트럼프 효과가 완전한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일론 머스크는 “짧은 시간에 이 정도의 국정 성취도를 기록했다면 당연히 트럼프 대통령의 얼굴을 러시모어산에 추가로 새겨넣어야 한다”며 “내가 직접 정을 잡고 조각을 하겠다”며 법석을 떨었다.
USAID가 갑작스레 해체되자 트럼프 지지자들은 대응자세를 갖추느라 발빠르게 움직였다.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USAID를 “통제불능인데다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하는 기관”이라고 맹렬히 비난했다. 하지만 지난 수년간 루비오는 소셜미디어에 USAID를 칭찬하는 글을 숱하게 올렸고 자신의 책에서도 자랑스럽고 칭송받아 마땅한 기관이라며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예산증액을 추천할 것이라고 약속한 바 있다.
트럼프의 가자 인수 발표 후에도 익숙한 패턴이 뒤따랐다. 미국의 군사개입을 끝내겠다는 트럼프의 결정을 오랫동안 지지해온 측근 인사들은 가자 지역을 넘겨받고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미군을 파병할 것이며 200만 명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인접국으로 내보내고 미국이 가자 지역에 대한 ‘장기적인 소유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그의 발표에 일제히 환호했다. 폭스 뉴스의 케일리 매케나니는 “트럼프 대통령이 4차원의 체스를 두는데 비해 우리는 고작 체커스 노름을 하고 있다”며 찬사를 보냈다. 메케나니의 논평이 나온 바로 그날, 트럼프의 관리들은 대통령 본인이 늘 그랬던 것처럼 그가 쏟아낸 계획의 핵심 내용을 뒤집기 시작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면 그건 당신이 4차원의 체스게임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 트럼프의 백악관은 궁정이고 그 안의 가신들은 변덕심한 국왕이 언제 마음을 바꿀지 몰라 전전긍긍하며 부산하게 움직인다. “틱톡은 끔직하다”가 “틱톡은 훌륭하다”로 한순간에 뒤바뀌자 왕의 신하들도 재빨리 태세를 전환했다. 여러 면에서 트럼프의 백악관은 헨리 8세의 궁정을 연상시킨다. 헨리 8세는 가톨릭 교회의 수호자를 자처하다가 교황이 그가 원하는 결혼 무효화를 인정하지 않자 가장 사악한 반대자로 돌아선 영국의 국왕이다. (헨리 8세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던 토마스 모어 경은 참수형을 당했다.) 트럼프가 보좌관과 지지자들에게 그의 뻔한 거짓말을 되뇌이도록 강요하는 이유는 사실과 오랜 신념보다 충성을 지고지선의 가치로 삼는 정권을 만들고자 하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서사극처럼 보일지 모른지만 여기엔 상당한 비용이 따른다. USAID 해체는 지구상에서 가장 빈곤한 수백만명의 인구를 실의와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과 마찬가지 결과를 가져온다. 무역과 관련해 트럼프가 캐나다를 고율관세 대상국으로 지목한 이유는 미스터리다. 2024 회계연도에 캐나다 국경을 통해 불법으로 미국에 들어온 이민자는 전체의 10%미만에 불과하다. 캐나다 국경에서 압수된 펜타닐 역시 전체 밀반입량의 0.2% 정도다. 무역 역조 역시 중국이나 베트남에 비해 규모가 적다. 사실 원유를 제외하면 미국은 캐나다와의 교역을 통해 엄청난 흑자를 누리고 있다. 따라서 캐나다에 대한 강경정책의 결과는 너무도 분명하다. 캐나다의 입장에서 보면 미국은 더 이상 믿고 의지할만한 우방국이 아니다. 당연히 캐나다는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면서 영국에서 중국에 이르는 지역에서 새로운 시장과 친구를 찾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정책으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은 미국의 민주주의다. 학자인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현대 정부의 역사를 살펴보면 단 한명의 강력한 권력자가 자신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혜택을 베푸는 ‘세습적’ 통치에서 제도와 규칙과 규범에 의한 통치를 향해 꾸준히 움직였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유로이 법을 논하던 시민들이 그들의 이익을 왕에게 간청해야 하는 탄원자로 대체되면서” 미국이 세습적 통치로 되돌아가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일대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파리드 자카리아 박사는 국제정치외교 전문가로 워싱턴포스트의 유명 칼럼니스트이자 CNN의 정치외교분석 진행자다. 국제정세와 외교부문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석가이자 석학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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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