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천민인 백정의 신분을 극복하고 조선 최초의 병원인 ‘제중원’ 의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조선인 최초의 외과의사 박서양은 어려서부터 총명해서 그의 행동거지가 남달리 특별했다. 백정인 박성춘은 아들의 착한 품성과 재주를 묻혀 두고 백정의 대를 있게 하고 싶지가 않아서 백방으로 아들이 교육 혜택을 받을 곳을 찾았다. 수소문 끝에 제중원 학당을 세워 고아, 천민, 가난한 백성들을 신분 여부를 상관치 않고 한글, 영어와 성경을 가르치는 무어 선교사를 만나서 아들의 학당 입학을 부탁했다. 박서양은 제중원 의학교의 입학시험에 합격하고 졸업해서 외과의사가 된다. 이후 그는 세브란스 병원에서 해부학과 화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었다.
조선이 일제에 합병된 후 박성춘은 만주로 가서 독립군에 가담하여 독립 운동을 했다. 박서양도 아버지의 권유로 독립군의 의사가 되어 부상자와 질병에 걸린 환자들을 돌보았다. 박서양과 박성춘은 최선을 다해 환자를 돌보다 질병에 걸려 순국했다.
두번째 이야기는 안중근 의사에 관한 비화이다. 안 의사에 관한 실록은 이미 세상에 소상히 알려져 있으므로 생략하고, 조선 총독인 이토히로부미를 암살하고 일경에 체포되어 담대하게 재판을 받고 처형되기 전까지의 인간적이고도 영웅적인 모습을 소개한다.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 역에 도착한다는 첩보를 받고난 후 전우들 앞에서 다섯 손가락 중 약지를 칼로 자르고 흰 천 위에 ‘대한독립(大韓獨立)’이란 4글자를 혈서로 새겼다. 안 의사는 옥중에서 어머니로부터 애간장을 끊게 하는 애절하고도 담대한 사랑이 담긴 편지를 받는다.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야.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자식이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조선 백성으로부터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 전체에 공분을 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네가 딴 마음을 먹지 말고 그냥 죽어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를 위해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 편지가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어미는 현세에서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선량한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안중근 의사가 일제에 체포된 후 재판정에서 최후 진술을 일제를 향해 일갈했다.
“나는 테러리스트가 아니고 대한제국의 독립군 대장이다. 조선 백성에게 달리 유언할 말은 없으나, 나의 거사는 오직 동양 평화를 위한 것으로, 나의 뜻을 이해하고 합심하여 동양의 평화를 이루는데 힘쓰기를 바라오. 내가 죽거든 나의 뼈를 하얼빈 역 옆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나라의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 주시오.”
안중근 의사는 자신의 시간, 자신의 재산, 자신의 청춘, 자신의 인생 모든 것을 다 내어놓았다. 뒤에 남은 조선 백성에게 만큼은 당당한 독립 국가에서 사는 그의 이상과 꿈을 물려주고 싶었다.
내가 존경하는 애국자인 박서양과 그의 아버지 박성춘, 안중근 의사의 영웅적인 담대한 삶을 돌아보면서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을 조명해 본다.
대한민국은 사람들이 좌와 우로 갈려, 죽기 살기로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그 결과가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로 나타났다. 수도권에 있는 군부대에 명령하여 국회 의사당과 선관 위원회의 건물에 침입했다.
국회의 계엄해제 의결로 윤 대통령이 탄핵되고 군부대 사령관들은 체포되었다. 구속된 사령관들은 모두 윤 대통령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검찰 조사에서 밝혔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자발적으로 헌재에 출석해서 국회와 해당 수사 부처에서 수사로 입증된 게엄 증거를 모두 부인했다. 자신의 잘못을 덮기위해 부하들의 진술을, 부하의 잘못으로 떠넘기고, 변명과 거짓말로 일관했다.
박서양과 안중근 의사는 국가와 독립군 동지를 위해 순국한 애국자 들이었다. 내가 살기 위해 계엄 부하들을 매도하고 궁지로 몰아넣는 윤 대통령이 참으로 불쌍하고 안타깝다. 한국의 이 혼란이 어서 수습돼 나라와 국민을 섬길 줄 아는 진정한 애국자 대통령이 나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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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김 사랑의 등불 대표, MD>